경제·금융

출판업계, 번역물 저작권 침해 여전

초벌 번역자는 빼고 유명인 단독으로 내세워<br>절판서적 재출간하면서 번역자 이름 바꾸기도<br>"눈에 띄게 하려는 출판사측 상술이 문제" 지적


올 초부터 출판계가 번역 저작물의 지적 재산권 침해 관련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출판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아나운서 정지영 씨의 대리 번역 시비를 야기한 '마시멜로 이야기' 사태의 경우처럼 실제 번역자와 책에 올라가는 번역자의 이름을 달리하는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절판된 책을 다시 출간하는 과정에서 원래 번역자의 번역물에 다른 번역자의 이름을 올리는 등 번역 저작물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 출판업계가 부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 같은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데는 쏟아지는 신간 중에서 눈에 띄게 하기 위한 출판사측 상술로 인한 문제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지난 13일 발간된 잭 켄필드의 자기계발서 '1%의 행운'은 인터넷으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고도원 씨를 번역자로 내세웠다. 그러나 초벌번역을 맡은 안종설 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독 번역으로 고도원 씨의 이름만 올려 대리 번역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인 것. 유정연 흐름출판 대표는 "공동 번역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면서 "우리나라 최고 번역가 중 한 사람인 안종설 씨에게 초벌 번역이라는 표현이 무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안 씨를 빼게 됐다"고 말했다. 출판사는 13일부터 발간한 초판 4쇄(1쇄당 2,500부씩) 1만부는 이미 판매가 된 상태이고, 추가로 인쇄한 5,000부는 모두 폐기했으며, 5쇄부터는 공동번역자를 모두 명기해서 발행하고 있다. 책은 2주가 채 못된 지금까지 10만여부가 나갔다고 출판사는 밝혔다. 절판된 책의 번역물을 그대로 재 출간하는 사례도 있다. 이는 1995년 WTO에 가입하기전 해적판으로 번역된 책을 재 출간하면서 빈번히 벌어지고 있는 경우. 지난 1988년 발간된 리처드 바크의 '하나(One)'는 집현전 출판사가 문을 닫으면서 절판되는 바람에 현문미디어가 2004년 저자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재발간했다. 이 과정에서 현문미디어는 88년 집현전에서 냈던 번역물을 그대로 실었으나, 원래 번역자 이 모 씨가 아닌 신 모 씨의 이름을 올렸다.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의 꿈'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이 문제는 원 번역자인 이 모씨가 자신의 번역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으나, 4년 동안 이미 신 씨가 번역한 책으로 판매됐다. 서정권 현문미디어 실장은 "원 번역자가 필명을 사용하는 바람에 연락하기가 어려워 대신 책의 권위를 위해 유명 번역가의 이름을 빌렸다"라면서 "원 번역자의 저작물을 실은 것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계에 만연해 있는 번역물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 김기태 세명대학교 매체창작학과 교수는 "번역물에 성명을 표시하는 것은 당사자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면서 "문화산업을 한다는 출판사가 번역물을 무단 도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는 물론 번역자의 인격권까지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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