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에너지 신 냉전시대] 한국만 손 놓은 '220조 폐로시장'

해체인력 佛 500명, 韓 30명… 기술도 선진국의 70% 불과

독립된 감독·규제 기구 시급


한국형 '에너지믹스' 설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변수 중 하나가 원전해체, 즉 폐로(廢爐) 사업이다. 폐로는 수명이 다한 자동차를 폐차하듯 원전에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고 해체하는 작업 전반을 일컫는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을 더 운영해도, 즉 계속 운전해도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고 충분히 경제적이라는 입장이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아 아직 구체적인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폐로 시장이 오는 2050년 약 22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성장 사업이라는 점이다. 지난 1970~1980년대 전 세계에 집중적으로 건설된 원전들은 약 10년 뒤부터 무더기로 영구정지 수순을 밟게 된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가동이 중지되는 원전은 2060년까지 약 435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해체비용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으나 1기당 평균 6,500억원 수준으로 분석된다. 신규 원전을 짓는 것과 버금가는 막대한 시장의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2007년 10년 연장 판정을 받은 고리1호기의 경우 2017년에는 해체절차에 돌입해 한국 1호 폐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폐로 시장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걸음마 수준이다. 당장 독립적인 규제·감독기구가 없다. 이미 원전 29기를 영구 정지시킨 영국의 경우 폐로만 전담하는 '원전해체청(NDA)'을 두고 있으며 스페인 역시 국영원전 해체 전문기업을 설립해 해체작업을 담당하게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관련법상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폐로작업 전반에 대한 승인과 감시 기능을 맡게 돼 있다. 원전해체는 발전정지부터 부지복원까지 약 13년이 소요되는 장기 사업이어서 별도의 관리부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고리1호기가 3년 뒤 해체절차를 밟는다고 가정하면 이를 담당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기 위해 관련법 신설 또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앞서 나가는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는 기술력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폐로 시장이 열려도 이를 따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폐로 경험은 소형 연구용 원자로 1기를 해체해본 것이 전부다. 정부는 지난해 '원전해체 기술개발 로드맵'을 내놓고 기술개발 과제를 선정했으나 실효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연구개발(R&D) 전담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수원의 해체 전담조직은 30여명 수준으로 '프랑스전력청(EDF)'의 500여명과 비교하면 10분의1에도 미치지 못한다. 학계를 중심으로 조직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 합리화 정책으로 엄두를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원은 "한국의 원전해체 기술은 선진국의 70% 수준에 불과해 시장 선점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별도로 충당부채 형태로 한수원 내부에 적립되고 있는 원전해체 비용에 대한 논란도 있다. 정부는 원전 1호기당 6,033억원(2012년 기준)을 적립하도록 했으며 이렇게 쌓인 돈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9조8,876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충당부채는 회계장부상 부채항목에 계상되는 것으로 기금 등과 달리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돈은 아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폐로사업이 급진전될 경우 단기적으로 이를 감당할 돈이 부족할 처지에 몰릴 수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원전해체 작업은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사업"이라며 "한수원의 수익구조와 신용등급 등을 감안할 때 해체비용 소요시기에 충분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충당부채 방식도 미래 세대에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지 않으면서 투자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