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경기부양 유혹에 오바마 변심

은행에 저신용자 대출 확대 압박… 4년만에 입장 번복<br>부동산 버블·대출 부실로 서브프라임 사태 재연 우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월12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한해의 국정운영 방향을 밝히는 연두교서 발표를 마친 뒤 청중에게 키스를 보내고 있다. 오바마는 이날 "더 많은 미국인이 주택시장 회복의 이점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데 이어 저신용자 주택대출 확대를 꾀하는 등 관련정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자료=블룸버그

미국의 버락 오바마(사진) 행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은행 등에 저신용자들에게도 주택대출을 확대하라고 압박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에 부실 주택대출을 줄이라고 종용하다가 4년 만에 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주택경기의 견고한 회복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대출규제를 철폐해 저신용자들에게도 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또다시 부실 주택대출 규모가 늘면서 금융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는 은행들이 신용도가 낮은 고객에게도 대출을 늘리도록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우선 백악관은 그동안 은행들의 부실 주택대출에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부실대출 저승사자' 역할을 해온 법무부를 타이르고 있다. 백악관은 "은행 고객이 정부 권장 신용도를 갖추기만 하면 파산을 하더라도 은행 책임은 없다는 사실을 보장해주라"고 법무부를 압박하고 있다.

또한 은행에는 연방주택관리청(FHA)이 손실을 보전하는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더 많은 계층에 주택대출을 지급하라고 종용하고 있으며 명문화된 대출기준에 얽매이지 말고 주관적 판단하에 대출을 집행하라고까지 권유하고 있다.


이외에 빚이 보유한 집값보다 많은 사람에게도 당사자가 현재의 저금리로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면 대출을 승인하라고 권유했다. 저신용자 대출 활성화를 위해 고안됐지만 법무부의 칼바람에 유명무실화된 FHA 대출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것도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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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과거 부실 주택대출을 엄단하던 기조를 180도 뒤집은 것이다. 오바마는 취임 이후 부실대출로 금융위기가 촉발됐다며 법무부를 앞세워 이를 엄단, 지난해 2월에는 JP모건 등 5개 은행에 합의금 250억달러를 물렸다. 이외에 통화감독청ㆍ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1월에 부실 주택담보대출을 이유로 BOAㆍ웰스파고 등 10개 대형은행으로부터 85억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의 저신용자 대출확대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발생하는 새로운 주택대출의 최대 90%를 FHA가 보증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용도가 500점(만점 800점)으로 비교적 낮은 국민이 FHA를 끼고 대출을 받았다가 파산해도 은행의 손실은 없게 고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법무부의 사정바람이 부는 가운데 은행들도 몸을 사리면서 이 같은 대책은 유명무실화하고 말았다. 현재 은행에서 주택대출을 받는 고객의 평균 신용등급은 700점에 달한다. 더구나 최근 주택시장이 회복세를 보이지만 저신용자의 주택구입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회복세가 금방 누그러질 것으로 보이자 새로운 프로그램을 들고 나온 것이다.

WP는 오바마 행정부는 현재의 주택 회복세가 고신용등급자나 투기꾼 위주로 진행되고 있으며 저신용자나 생애최초 주택구입자들은 회복 기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짐 패럿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주택부문 선임 자문관도 "(현재의 주택시장은) 최고신용등급으로 모기지론을 받은 사람들이 수요의 25%만 줄여도 전체 수요가 줄고 회복이 지연되는 취약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택경기 부양책이 결국 부동산 버블과 대출부실을 부를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에드 핀토 전 페니매 최고경영자(CEO)는 "정부 정책이 현실화된다면 위험의 수문을 여는 것"이라며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우리 경제를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과거로 돌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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