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은행의 원화 유동성 비율 규제를 완화함에 따라 은행권은 자금부담이 100조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은행들은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채 상환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 대출금리와 예금금리를 점차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의 자금담당 부행장은 "(유동성 비율 규제 완화는) 시기적으로 꼭 필요한 조치였다"며 "이제 은행들이 한숨을 돌린 만큼 자금계획을 다시 짜고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성 비율 규제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의 안정적인 유동성 확보를 위해 3개월 이내 갚아야 할 부채보다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도록 한 것이다. 매달 유동성 비율 100%를 못 맞출 경우 은행장 경고 또는 기관경고를 받게 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어떤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이 비율을 맞춰야 하는 부담이 컸다. 최근 금융경색이 심화되면서 은행들이 자금조달이 힘들어지고, 유동성 비율을 맞추기가 어렵게 되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높은 금리로 예금을 받고, 은행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했다. 은행들의 자금수요가 늘면서 기준금리가 내려간 상황에서도 은행채 금리는 오히려 오르는 바람에 금리차이가 3%포인트를 넘었다.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부담이 커진 것이다. 감독당국이 유동성 비율의 기준이 되는 자산을 3개월 이내에서 1개월 이내로 완화함에 따라 은행들은 자금조달 부담이 크게 줄었다는 입장이다. 감독당국은 "7개 시중은행이 자체 추산한 결과 8월말 현재 유동성 비율이 13.5%포인트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며 "은행채 발행수요를 줄임으로써 은행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또 특판예금 등 고금리 수신유치 경쟁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은행들도 자금조달에 대한 부담이 줄게 됐다고 말한다. 유동성 비율 완화로 '은행채 발행수요 감소 → 은행채 금리 하락 → CD 금리 하락 → 가계와 기업의 대출금리 하락'의 연쇄작용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6월말 현재 은행의 유동성 자산은 635조원, 유동성 부채는 595조원으로 유동성 비율은 106.7%를 유지했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은행들이 105%를 타겟으로 비율을 맞춰온 만큼 이번 조치로 20% 가량 부담이 줄어든 효과가 있다"며 "업계 전체적으로 100조원이 넘는 자금부담 감소효과가 생긴다"고 평가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유동성 비율이 1%포인트 낮아지면 1조원의 자금부담이 줄어 이번 조치로 인해 10조원 이상의 여유가 생겼다. 한 시중은행의 자금담당 부장은 "연말에 만기도래하는 25조원의 은행채에 대한 부담이 없어졌고 한국은행의 은행채 매입도 필요하지 않게 됐다"며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져 대출금리도 내릴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고 전했다. 한편 감독당국은 내년으로 예정된 새 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 협약인 바젤2 의무화 적용시기를 연기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