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일보 직전까지 내몰리자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위상이 한때 도마 위에 올랐지만 그렇다고 위안화가 머지않아 달러를 대신할 기축통화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드물다. 아직은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기축통화의 특권인 '시뇨리지 효과'를 부여 받을 만큼 파워가 커지지는 않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5일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이 "위안화가 글로벌 화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발언한 데 대해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위안화 국제화가 한 세대는 지나야 할 것이라고 찬물을 끼얹었다.
FT는 위안화 국제화의 시간표를 늦춘 이유로 위안화가 과거 영국의 파운드화나 지금의 달러처럼 무역통화로서의 비중이 커지지 않은데다 위안화 국제화 단계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현재 외환보유에 위안화가 포함된 나라는 말레이시아와 나이지리아ㆍ칠레 등 일부 국가뿐이며 "통화스와프를 말하지만 이는 정치적 상징일 뿐"이라고 FT는 지적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중국의 위안화 자유화, 예상보다 더딘 위안화 국제화 시간 때문에 위안화 국제화가 아예 불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고 FT는 전했다. 조지 매그너스 UBS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정부가 20년간 위안화 국제화에 대해 얘기했지만 폐쇄적인 경제체제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크게 변한 것은 없다"고 꼬집었다.
중국 정부는 기축통화의 이익을 누려온 미국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하지만 정작 외환보유에서 미국 국채는 늘리고 있다. 안전자산으로 미 국채를 대신할 만한 것이 없고 미국 시장의 구매력 저하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보다는 중국 스스로 달러의 지위를 인정하며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이 위안화의 딜레마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외부적으로는 위안화가 달러화의 덫에 걸려 있다. 2조달러에 달하는 미 국채를 보유하고 보유외환의 70%를 달러자산으로 보유한 중국은 달러화 몰락을 바라지 않는다. 달러 가치가 폭락할 경우 타격을 입으면서 경제도 휘청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국채 보유를 대폭 줄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미 국채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보유 국채 규모를 유지하거나 아예 더 사들여야 할 판이다.
내부적으로는 유동성 관리가 고민거리다. 당국은 달러 유입에 따른 위안화의 상승 압박을 원하지 않지만 외환시장에 위안화를 풀자니 인플레이션 위협이 커져 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 쌍중줘 농업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수출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안화는 절하돼야 하지만 핫머니 유입으로 통화가치가 계속 오르고 있다"며 "위안화 가치 상승을 바라지 않지만 달러 유입을 막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위안화 국제화라는 시장 자율과 핫머니 등 부작용에 대한 규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조심스럽게 나갈 수밖에 없다. 실제 인민은행은 지난해 4월 위안화의 하루 변동폭을 확대하며 자유화 행보를 보였지만 위안화 금리차를 이용한 홍콩발 재테크에 한방을 맞고 부랴부랴 핫머니 규제방안을 내놓았다. 호주중앙은행 이사를 지낸 워릭 매키빈 브루킹스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에 초점을 맞추지만 달러 영향력에 대처하는 것은 조만간 이루기 어려운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