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메르스 단상, 집단 패닉의 심리학


필자가 과거 군의관 시절 얼마 동안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서 아프리카 북단 서부 사하라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의사·간호장교 등의 의료지원단을 파견했다. 미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파견된 장교들을 대상으로 진료활동을 하고 정신과 군의관으로서 사하라 사막에 흩어져 있는 군 캠프를 순회하면서 스트레스 관리법 강의도 하고 이들에 대한 심리상담도 하는 것이 필자의 주 임무였다.

스트레스 상황선 루머에도 심리적 동요

근무 중반 즈음 파견대장님과 의료반장을 맡은 선임 군의관이 휴가가 임시로 의무대장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사막 한가운데 있는 군 캠프에서 무전이 왔다. 약 20~30명의 군 장교들이 있는 캠프에서 군인 한 명이 설사를 했고 이후 2~3명이 추가로 복통과 메슥거림을 호소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즉각 조리실의 요리를 중단하고 보유한 전투식량만 먹도록 조치한 후 간호장교와 함께 헬기를 타고 몇 시간 거리에 있는 캠프로 날아갔다. 본부에 돌아와서 검사결과를 종합해서 유엔으로 보고한 결론은 군인 한 명이 단순 설사를 했고 음식에는 이상이 없었는데 이를 본 동료군인들이 불안에 휩싸여 심인성의 소화기 증상을 호소했다는 것이었다. 즉 심리적 동요에 의한 집단적 패닉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거나 긴장을 하게 되면 작은 일에도 쉽게 놀라고 예민해진다. 인간의 전두엽은 평소에 놀람·공포 같은 감정 반응을 자제하고 외부의 위협을 적절하게 판단해 대응하도록 진화해왔지만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편도체가 과도하게 흥분하게 되고 전두엽의 이성적 판단은 마비된다. 이로 인해 공황장애 같은 불안증상이 나타나고 막연한 불안에 근거한 집단적 히스테리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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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비과학적이고 다소 비정상적일 정도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정상적인 반응일 수 있다. 다만 성숙한 인간이라면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려고 노력하면서 루머에 휩싸여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메시지 등을 통해 각종 루머와 괴담이 양상되고 공포를 부추기는 현상은 어느 정도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박하고 두려운 일이 터졌을 때, 모든 사람에게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해 행동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집에 불이 났을 때 가장은 가족 구성원을 안심시키고 신속한 판단으로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해 도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리더, 구체적 지시로 공포 확산 막아야

사회적인 재난 상황에서 집단 구성원을 잘 다독이고 이런 현상을 잘 다루는 것이 소위 리더십이다. 리더의 능력이 없거나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면 그 집단의 미래는 늘 불투명하고 운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전문가들에게 판단과 집행을 결정할 권한을 주는 것도 리더가 할 일이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의 안위보다는 구성원의 행복과 복지를 위한다는 대의명분과 본인의 지위에 따르는 책임의식에 근거하는 것이며 "자신의 할 일"을 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은 문제 해결의 당사자 혹은 지휘자가 돼야 하는 정부와 고위 공직자, 정치인, 사회 지도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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