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인터뷰] 정창관 위원장 "취미가 직업이 되려면 전문가 돼야"

정창관 전통예술경연대회 평가위원장<br>국악CD음반 관련 정보 사이트 운영<br>국악음반 '판소리 5명창' 제작기획도


"취미가 직업이 되려면 나 혼자 좋아서는 안돼요.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분히, 그리고 고집스럽게 공부해서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국내 최다 국악CD음반(4,337장) 소장자이자 국내 발매된 국악CD음반 관련 정보를 망라한 인터넷사이트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www.gugakcd.kr)'를 운영하는 정창관(60ㆍ사진) 선생은 "취미를 발전시켜 인생 2막을 시작하려면 한 분야를 좁고 깊게 파들어가 전문가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은행원 출신이지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등이 수여되는 전국의 102개 전통예술경연대회 평가사업을 수행하는 전통예술경연대회평가위원회 위원장과 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는 국악 연구자나 국악방송 관련 전문가들도 음반정보를 찾으러 자주 들를 뿐 아니라 각종 홈페이지 경연대회에서 수상한 베스트 사이트다. "국악CD음반 발매 역사를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죠. 한 사람이 수고하면 5,000만명이 편해집니다." 정 위원장은 한때 우리나라 라이선스 클래식음반 대부분(3,500여장)을 수집한 클래식 애호가였다. 하지만 국악이 궁금해 음반을 사러 갔다가 구하지 못하자 내친김에 사람들을 모아 국악음반을 직접 만들자고 제안했다. "서양 고전음악은 넘쳐나는데 우리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게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HSBC은행에 다니던 그는 금융인의 감각으로 지난 1987년 최대 음반 유통사였던 신나라레코드를 찾아가 '판소리 5명창' 음반 제작을 요청했다. 음반이 판매되지 않으면 전량 구매하겠다는 조건이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당시 1만장 팔려도 1,000장 팔렸다고 하던 시대였는데 우리가 5,500장에 해당하는 로열티를 받았으니까 실제 판매량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기회가 됐고 신나라 측은 국악이라는 새로운 사업영역을 발굴했죠." 그는 1989년 한국고음반연구회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해 줄곧 부회장을 맡으며 학문적 깊이를 더하는 한편 연구회 이름으로 명인명창선집을 제작해 사라져가던 우리의 소리를 복원해내고 있다. 1998년부터 고령화로 세상을 떠나는 명창이 많은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비를 털어 명인명창들의 음반을 매년 1장 이상 제작해왔다. 2001년 HSBC은행 부지점장으로 명예퇴직한 뒤에는 영국 국립도서관, 미국 의회도서관과 인디애나대도서관 등 세계 주요 도서관에 국악음반을 기증하고 해외에 산재된 한국인의 소리가 담긴 원반을 찾아 국내로 들여오는 작업도 하고 있다. 2007년에는 미 의회도서관에 소장된 한국인의 목소리를 담은 음반을 국내 처음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지난해 난계악학 공로상을 수상했다. 지난 20여년간 국악에 빠져 살아온 덕에 '귀명창'의 반열에 오른 그는 우리 음악과 서양 음악의 차이에 대해 "서양 음악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데 반해 우리 음악은 좀 더 자유롭고 여백이 있다. 더 즉흥적이기도 하고 듣는 사람과 함께 어우러지는 묘미도 있다. 국악은 고리타분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러 번 들어보면 유전적으로 끌리는 대목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악의 대중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당장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세계화라는 큰 흐름으로 봤을 때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운 게 현실이고 서양 음악을 해온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해 학생들이 우리 음악을 학교에서 배우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국악은 유전적으로 끌리는 만큼 국악계가 지금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통해 저변인구를 늘려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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