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나마 사실을 인지한 국민안전처가 190억원을 긴급 투입해 3만1,119벌을 조기 구매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의 제품 검사가 생략된 방화복이 언제부터 얼마나 사용됐는지를 아직도 모른다니 갑갑하다. 국민안전처가 문제를 야기한 납품회사 2곳을 지난 6일 수사기관에 고발했다면 적어도 가짜 방화복 수량만큼은 파악했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조사와 수사가 제 속도를 내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무인증 특수방화복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국민과 소방관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원자력발전소 부품이나 해군 함정의 조달·납품 비리에 버금가는 중대사안이다. 무인증 방화복을 제조·납품한 업체들의 인식은 더욱 한심하다. '납품 일정을 맞추기 위해 합격 날인을 위조했을 뿐 불량 방화복을 만들지는 않았다'는 업체들의 주장은 고질적 병폐인 '빨리빨리병'과 안전불감증의 전형이다. 당국은 적폐(積弊)를 척결한다는 의지로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낼 의무가 있다.
우리는 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근본 대책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재정이 열악한 일부 시도의 소방공무원들은 자기 돈을 들여 기본 장비를 구입·사용하는 실정이다. 신분보장과 낙후한 장비 보강이 없는 한 사고는 재발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소방관 5명이 순직한 광주 헬기 추락사고 직후 '소방 인력과 장비를 보강해 사기를 진작시키겠다'고 약속했었다. 소방관의 사기는 국민 안전과 직결된다. 소방관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의 갑질'부터 바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