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황에서 주택시장의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시장 전문가들은 연초부터 나타나고 있는 주택거래 증가와 가격 회복세가 완만하게나마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입을 모은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오히려 단기간의 거래·가격변동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시중의 풍부한 유동자금이 부동산으로 한꺼번에 유입될 경우 자칫 부동산 버블 문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반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최근 저녁식사 자리에 함께 했던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최근의 회복세가 반짝 장세로 그치고 다시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이라는 답을 내놨다. 기자 역시 이 답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이는 단순히 유주택자들의 자산가치 하락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는 전세발 '버블 붕괴'가 가져올 후폭풍이다. 지속된 전셋값 상승세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이 60%를 넘어선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서울 외곽지역에서는 이 비율이 70%까지 치솟았다. 일부 단지는 80~90% 수준에 육박한 곳도 속출하고 있다.
단순히 매매가에 근접한 가격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더 큰 위험은 그것이 '빚 잔치'라는 점이다. 정부와 금융기관을 통해 시중에 풀린 전세보증금 대출액은 이미 수십조원에 달한다.
전세발 '버블 붕괴' 후폭풍 문제
정부가 올해 서민주거안정이라는 명목 아래 전세보증금 대출로 책정한 예산만 4조7,000억원이다. 정부 지원보다 금리는 다소 높지만 시중 은행권에서도 전세보증금 대출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집값이 다시 하락세로 반전될 경우 자칫 최대 피해자는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시장에서는 전셋값 버블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한 경매정보업체가 지난해 서울 등 수도권 일대에서 경매로 나온 아파트 1만2,631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20%에 육박하는 2,481건에서 세입자가 낙찰가를 온전히 돌려받지 못했다고 한다. 정부가 최근 주택 임대차 구조를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해나가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선 것도 이 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에 쏠린 세입자를 월세로 분산시키면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 같은 구상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망스럽다. 최근까지 정부가 내놓은 월세 활성화대책은 시장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기껏해야 민간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 감면혜택을 늘리고 세입자가 내는 월세는 소득공제를 적용해주겠다는 식이다. 시장의 반응이 싸늘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세입자가 중개업소마다 잔뜩 쌓여 있는 월세 매물을 외면하고 수천만원의 보증금을 올려주면서까지 전세로 머무는 것은 단지 월세 부담 때문만은 아니다. 전세는 1970년대 아파트 시대가 본격화한 후 단순한 집세의 개념을 넘어 '저축'의 의미로 인식돼왔다. 차곡차곡 모은 전셋값은 내집 마련을 위한 훌륭한 밑천이었다. 이 때문에 전세가 아닌 월세로 산다는 것은 심리적 측면에서는 주거의 질 하락이요, 내집 마련의 꿈에서 더욱 멀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정부는 시장 구조를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겠다면서도 정작 제도권 밖에 있는 수많은 미등록 월세 임대사업자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그렇다고 주택 임대사업자를 파악할 도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정확한 실태·분석 주택정책 필요
실거래가 신고제도만 활용해도 정확한 임대소득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어 가격을 부풀리거나 낮추는 이른바 '업·다운 계약서'의 가능성도 거의 없다. 정확한 임대소득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미 갖추고도 이를 활용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원인을 무시하고 현상만 치유하고 보자는 대증요법에만 치우친 단기 대책에서 벗어나 시장의 흐름을 내다본 큰 틀의 주택정책이 필요한 때다.
정부가 임대정책을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왜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지, 도대체 월세시장 규모와 가격은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정확한 실태와 원인부터 제대로 분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