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칼럼] 미국에서 부러운 것


뉴욕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기사로 쓰기에 가장 꺼려지는 것 중 하나가 미국과 한국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다. 지금은 정도가 많이 덜해졌지만 한국에서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이슈가 부각되면 미국을 준거로 삼는 경우를 여전히 접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 100년간 세계 최강대국으로 세계 질서를 주도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참고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러나 문화적ㆍ역사적 배경이 판이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만 터지면 미국을 돌아보는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


다만 지난 2년여간 미국을 체험하면서 하나 부러운 것이 있다면 이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얼마 전 최준 전 뉴저지주 에디슨시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민주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에 도전하기 위해 활동하는 그는 사실상 '백수'다. 생계는 전문직으로 일하는 그의 부인이 온전히 책임지고 있다.

그의 가족은 육아를 위해 히스패닉계 '내니(nannyㆍ보모)'를 고용하고 있다. 그는 보모와 정식 고용계약을 맺고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시민이라면 이런 계약은 필요하지 않다. 그때 그때 현금을 지불하고 보모를 쓰면 그뿐이다. 하지만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는 최준씨에게는 그런 행태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 엄격한 자기관리는 당연하다. 1993년 법무장관 지명자였던 조 베어드는 불법체류자를 보모로 쓴 것이 드러나 낙마했다. 이른 바 '내니 스캔들'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미국사회를 이끌어나가는 힘은 엘리트들의 역할이다. 이들에게는 일반인들보다 몇 배 가혹한 잣대가 적용된다. 2011년 스리랑카 출신으로 월가에서 성공신화를 일군 라자트 굽타는 내부자거래혐의로 11년형과 1억5,660만달러의 벌금을 선고 받았다. '살림의 여왕'으로 유명한 마샤 스튜어트는 2000년대 중반 생명공학 임클론의 주식내부거래에 대한 위증혐의로 5개월간의 옥살이를 했다.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누린 이들에게는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엄격한 처벌을 받은 것이다.

관련기사



또 하나 가진 계층의 사회 공헌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밋 롬니 후보가 가족재단을 설립해 절세를 했다는 것이 논란이 됐다. 하지만 그의 재단은 그동안 수백만달러를 각종 사회활동에 기부해왔다. 최근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부자순위에서 미국인으로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블룸버그 뉴욕 시장이 올랐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자는 운동인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를 주도하거나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청년 재벌 마크 주커버그 역시 이 운동에 동참해 지난해 12월 페이스북의 주식 1,800만주, 당시 시가로 4억9,800만달러를 지역보건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일하는 실리콘 밸리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에 기부했다.

미국 부호들의 호사스런 행태는 종종 언론에 등장한다. 수백억짜리 저택에 살면서 자가용 비행기로 출퇴근하고 한번에 수억원짜리 파티를 연다. 하지만 이는 가십일 뿐 지탄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가진 부를 누리면서도 사회에 대해 상당 부분 기여를 하고 있다는 믿음이 전제돼 있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미국사회가 여전히 굴러가는 것은 사회에 대해 뚜렷한 책임의식을 가진 엘리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여전히 인선을 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장관 등 고위공직자에 오르려는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위장전입, 불투명한 부의 축적, 탈세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낙마했다. 껍데기만 사회지도층일 뿐 속은 서민들보다 훨씬 더 천박한 한국사회 엘리트들의 단면이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는 상응한 도덕적 의무와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에 있어서는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아 있다.

이학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