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저당권 설정비용 반환 소송은 2011년 8월 대법원이 "대출 부대비용을 소비자가 부담하게 한 은행 약관은 불공정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동안 은행 측의 설명에 따라 아무 의심 없이 수십ㆍ수백만원의 대출 부대 비용을 부담해왔던 고객들은 지금까지 지급해온 비용을 돌려달라며 줄지어 소송을 냈다.
그러나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진행된 소송은 99%가 은행의 승리로 끝났다. 실제 은행연합회 등에 따르면 올 10월까지 판결이 나온 은행 상대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 소송은 1건을 제외하고 모두 은행이 승리했다. 이 중 9건은 항소심 판단도 받았지만 이 역시 은행 측의 승소로 결론 지어졌다.
고객이 은행을 상대로 승리한 사례도 2건 있었지만 해당 사건들은 모두 1인 소송에 불과해 다른 대규모 집단소송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로만 취급됐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550여명에 이르는 소비자들의 승리라는 점에서 규모나 금액 측면에서 지금까지의 판결과는 차이가 크다.
이 판결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것은 법원의 분위기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법원이 판단이 은행에서 대출자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한 상황이 판결문 등을 통해 확연히 감지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 역시 "대출자 중 상당 수가 체크박스에 아무런 선택 표시를 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대출자가 은행 직원으로부터 개별적 교섭의 기회를 제공 받지 못했음을 추측하게 한다"고 판단했다. 같은 달 민사합의31부도 "은행의 이 조항을 약관이 아닌 개별 약정으로 볼 경우 사업자들이 고객의 선택이라는 외관을 이용해 법 적용을 피해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 역시 이 같은 점진적인 변화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판결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최승록 부장판사)는 "은행과 고객과의 계약 등을 살펴보면 부대비용의 부담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표시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설사 표시가 있다 해도 항목별 부담 주체를 결정하거나 1~99% 사이의 부담비율을 정하는 등의 사례가 거의 없어 구체적인 협상이나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고객은 부담 조항을 선택하며 몇 가지 선택지 가운데 선택하는 것만 가능했지 충분히 검토한 후 영향력을 행사해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약관으로 봐야 한다"며 "당사자의 선택과 보충을 전제로 한 약관에서 당사자의 실질 선택이 없었기에 무효이며 해당 비용은 납세 의무가 있는 은행이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패배 행진을 이어오던 소송 관계자들은 이번 판결이 앞으로의 분위기 반전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해당 사건의 대법원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이번 승리가 모든 상황을 뒤집어 놓으리라 단언하긴 어렵지만 대규모 소송인 만큼 어느 정도 영향은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