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건설업계 위기는 '부동산 불패' 환상과 과욕이 빚은 비극"




이달 CBO 3500억 발행 등
중소·중견 건설사 집중 발굴
유동성 1조2,000억 지원 온라인 대출장터·일석e조보험
현장 아이디어·신보 노하우로
만들어낸 中企지원 '名品금융'
"부동산시장의 장기침체는 환상과 과욕이 부른 비극입니다. 건설업체들은 '부동산 불패'라는 허상 속에 주택수요를 잘못 예측했고 지방자치단체는 주먹구구식으로 개발 허가를 내줬습니다. 양쪽의 욕심이 미분양 아파트 급증과 건설업계 위기를 몰고 왔습니다." 안택수(68ㆍ사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건설업계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과욕이 빚어낸 오판'이라고 일갈했다. 지난 2008년 7월 이사장에 취임해 중소기업들을 바로 곁에서 지원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의 최전방을 맡아왔던 그다. 기자로, 국회의원으로, 정책금융기관장으로 다양한 관점의 삶을 살아온 그의 '눈'은 우리나라 건설업계 위기의 심장에는 바로 인간의 허상과 욕심이 있다고 꿰뚫고 있었다. 안 이사장은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풀고 세금을 낮추는 등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과연 그 처방이 통할지는 하반기나 돼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주택건설 경기가 살아나야만 한국경제가 진짜로 살아날 수 있는데 아직까지는 미분양 물량이 많이 남아 있어 시간이 다소 걸릴 듯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건설 분야를 지원해 조금만 살려내면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은 3% 안팎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신보는 그동안 다른 금융기관보다 중소 건설업계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펼쳐왔다. 2009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건설공사 브리지론 보증제도'를 지난해 부활시켜 총 420건에 7,223억원을 지원했다. 또 12월에는 17개 건설사를 포함해 75개 기업이 편입된 '건설사 유동성 지원 유동화증권(CBO)' 4,020억원을 발행했다. 올해도 이 같은 지원을 지속할 방침이다. 안 이사장은 "올해는 이달 중 3,500억원 규모의 CBO를 발행하는 등 성장 유망한 중소ㆍ중견 건설사 240개를 집중 발굴해 1조2,0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 이사장은 오는 7월 중순 임기가 만료된다. 그가 재임기간 중 선보인 정책 가운데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뭘까. 안 이사장은 주저 없이 올해 초 내놓은 '온라인 대출장터'와 '일석e조보험'을 꼽았다. 안 이사장은 "두 상품은 재임기간 중 현장을 발로 뛰면서 만난 중소기업인들로부터 얻은 아이디어에 신보의 노하우를 결합해 개발했다"며 "기업인들의 가려운 곳을 직접 긁어주는 중소기업 지원 금융상품의 '명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온라인 대출장터는 온라인상의 대출거래 사이트로 중소기업이 최적의 조건을 제시하는 은행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서비스가 시작된 지 두 달 만에 각 은행별로 2,657개 지점이 온라인에 등록했으며 총 1,655건, 1,509억원의 자금지원이 이뤄졌다. 안 이사장은 "온라인 대출장터는 그동안의 대출관행에서 '을'이었던 중소기업이 '갑'이 돼 대출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혁명적 시스템"이라며 "2월 시스템 개시 이후 온라인 대출장터 이용 기업들의 평균금리가 5.79%로 그 이전보다 무려 0.43%포인트나 인하됐다"고 전했다. 그는 "평균금리가 1%포인트 낮아질 경우 금융비용 절감효과가 연간 4,000억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일석e조보험은 국내 최초로 기업들이 외상값(매출채권)을 떼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비해 보험을 들면서 동시에 외상값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받아 쓸 수 있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1억원의 외상값이 있는 기업이 이 상품에 가입하면 손실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체 금액의 80%를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다. 현재 중소기업청ㆍ기업은행과 함께 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다른 금융기관으로도 확대할 방침이다. 안 이사장은 "출시 이후 현재까지 총 40건에 보험가입 금액은 612억원으로 이중 86억원의 대출이 실행됐다"며 "상품출시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신보 자체적으로 46건, 연간 1,051억원 규모의 보험심사가 진행 중이고 기업은행으로부터 91건의 심사가 들어오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신보는 이름 그대로 국민의 세금을 활용해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고 그에 따른 보증을 서 금융지원을 해주는 기관. 신용평가가 세밀하고 정확하지 않다면 혈세가 낭비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신용평가사들이 저축은행과 중견 건설기업들의 부실을 미리 감지하지 못하자 금융권의 신용평가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은 신평사의 평가 대신 신보의 평가를 중요 잣대로 활용한다. 신보가 기업금융에 대한 신용평가 시스템 붕괴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안 이사장이 그동안 심혈을 기울인 곳은 신보의 보증심사 시스템이다. 안 이사장은 취임기간 동안 두 단계를 거치며 보증심사 시스템을 뜯어고쳤다. "과거 실적만으로 진행된 신용평가로는 중소기업을 제대로 지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새로운 리스크에 대한 예측도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미래성장성ㆍ경영능력 검토표'를 도입했지요." 현재에 대한 평가보다는 미래를 향한 추세에 방점을 찍었다는 의미다. 미래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자칫 부실 가능성이 우려됐지만 적용 결과는 정반대. 미래라는 변수를 적용한 보증의 부실률(0.7%)이 기존 보증의 부실률(1.0%)보다 낮았다. 신보는 높은 보수와 복지혜택, 안정적인 고용보장 등으로 대표적인 '신의 직장'으로 꼽혀왔다. "신보 임직원들은 금융위기 이후 야근과 휴일근무를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일했습니다. 실제 일하는 것에 비해 국민의 사랑이 부족해 안타까웠을 정도입니다." 안 이사장은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문화 체질개선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GI(Great Innovation)캠페인을 시작, 직원들의 제안을 취합해 업무 프로세스, 고객만족, 직원만족도를 높여가고 있다. 그동안 들어온 개선제안만 무려 1,300여건. 즉각 실행이 가능한 것들을 우선 정리한 후 중장기 체질개선이 필요한 것들을 추려 올해 집중적으로 바꾸고 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떠나야 바다에 이릅니다. 회사에 출근하는 순간 진정한 공복(公僕)의 자세를 갖고 공익을 위해 살겠다는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신보 체질개선의 시작입니다." 안 이사장은 신보가 제대로 평가받기를 원한다면 "우선 모든 것을 버리고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고 안주하려 했던 것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신보에 대한 당부이자 우리 사회에 대한 화두이기도 하다.
기자로…공무원으로… 국회의원땐 '금융통'
■안 이사장은 보증심사제 수술·기업문화 혁신 등 이사장 취임후 끊임없는 변화 시도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인터뷰한 날은 지난 24일. 취재진과 만난 그는 "오늘이 제 인생의 회오리가 시작된 날"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47년 전 그날은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이 '밀실에서 이뤄지는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를 외치며 거리에 나서기 시작한 날이다. 박정희 정권의 밀실협상은 계속됐고 급기야 그해 6월3일 대학생 시위대에 성난 시민들까지 합류하면서 '6ㆍ3 학생운동'으로 이어졌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생이던 안 이사장도 시위에 나섰고 이와 함께 그의 인생도 달라졌다. 그는 "6ㆍ3 학생운동은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은 순수하고 애국적인 학생운동이었다"며 "국내의 극렬한 반대 덕분에 당초 6억달러였던 대일청구자금이 9억달러로 늘어났고 이는 고스란히 국가 재건에 쓰였다"고 말했다. 안 이사장은 평생 변화와 변신을 거듭했다. 6ㆍ3 학생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그는 졸업 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정치부ㆍ사회부ㆍ경제부 등을 두루 거치며 13년간의 기자생활을 통해 사회 전반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 그는 1983년 기자에서 보건사회부 공보관으로 변신했다. 이후 국민연금공단 초대 재정이사를 거쳐 1996년 대구 북구을에서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내리 3선을 하며 한나라당 정책위부의장, 국회 재경경제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국회의원 시절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를 받았으며 재경위(7년)와 정무위(1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금융통'으로 인정받았다. 2008년 신보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재임 중에도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했다. 안 이사장은 수시로 지점과 중소기업을 직접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 GI캠페인 등 기업문화 혁신 프로그램을 도입해 관료주의적인 '물'을 벗겨내는 데 주력했다. 특히 공식화돼 있던 보증심사제도에도 칼을 대 미래지향적인 시스템으로 변신했다. 안 이사장은 오는 6월 말로 임기가 끝난다. 이제는 어떤 변신을 준비하고 있을까. "다음에는 어디서 뵐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아직도 변화를 즐기는 듯하다. ◇약력 ▦1943년 경북 예천 ▦1962년 경북고 졸업 ▦1966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68년 한국일보 입사 ▦1980년 한국기자협회장 ▦1982년 보건사회부 공보관 ▦1988년 국민연금공단 재정이사 ▦1996년 15대 국회의원 ▦1998년 한나라당 대변인 ▦2000년 16대 국회의원 ▦2003년 국회 재정경제위원장 ▦2004년 17대 국회의원 ▦2005년 한나라당 대구시당위원장
"정치문화 과거보다 후퇴"
"日정치권 타산지석 삼아야"
"정치문화가 과거보다 후퇴했습니다."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인터뷰 중간중간 사회 각 분야에 대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했다. 기자ㆍ국회의원ㆍ공무원으로 살아온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목소리였다. 안 이사장은 "정치 신인들 중 젊은 세대가 너무 많아 인내하고 타협할 줄 아는 정치 대신 대결하고 제압하고자 하는 정치양상이 더 강해졌다"며 "그동안 너무 험악하고 살벌하게 정치를 해 여의도 정치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치인들이 노ㆍ장ㆍ청 3세대 간 조화를 이뤄야 균형 있는 정치를 할 수 있으며 국민들도 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가 사라지고 통치만 남았다'는 지적에는 공감하지 않았다. 안 이사장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대단히 민주적인 정부"라며 "오히려 힘이 너무 없어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모습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안 이사장은 최근 일본 대지진을 언급하며 "우리나라 정치권이 일본 정치권의 무력한 모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일본의 정치가 무력한 것은 바로 금권과 파벌정치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는 다행히 지난 정권 10년간 정치개혁을 많이 해 이런 부분이 많이 없어졌지만 언제나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안 이사장은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던 은행권에 대해 "땅 짚고 헤엄치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며 섭섭했던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2009년 매일 밤 직원들이 10시, 11시까지 야근하고 주말에도 하루밖에 못 쉬면서 일을 했는데 은행은 꼼짝도 안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더라"며 "(은행들이) 돈을 떼여도 보전받을 수 있는 보증대출만 해주다 보니 당시 (신보가) 보증서를 대출금의 100% 수준까지 발급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은행들이 대출금액의 0.25%를 신보에 출연해 보증 시스템을 지원해 윈윈 체제를 갖추고는 있지만 국가위기 사태 때는 금융권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