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겪으며 안정성 중시 블루칩으로 회귀 현상 뚜렷<br>인상파·거장들 작품 강세 이어져<br>피카소 '누드…' 1억648만弗등 미술품 경매서 잇단 신기록 경신
| 피카소의 작품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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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청동 조각 '걷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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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술시장은 급락을 경험했다. 2008년 가을 이후 크리스티와 소더비 의 현대미술 거래 낙찰률은 50% 이하, 최악의 경우 30%대까지 주저앉았고 낙찰 총액도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러나 불과 2년만에 반전이 시작됐다. 지난 2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걷는 사람(Walking Man)'이 1억430만 달러에 팔려 2004년 파블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이 기록한 미술경매 최고가(1억420만 달러)를 깼다. 한번의 '사건'에 그치지 않고 연이은 최고가 신기록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림 한 점 1억648만달러 기록 경신=최고가 기록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5월, 3개월만에 또 기록이 바뀌었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파블로 피카소가 연인 마리 테레즈를 그린 1932년작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이 1억648만 달러(약 1,189억원)에 팔렸다.
이후 경매시장의 기록 경신 행진은 '진행형'이다.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파리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돌조각 여인 두상이 3,850만 유로(약575억원)에 낙찰돼 모딜리아니의 작품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한 동시에 프랑스 경매에서 최고 거래가 기록을 세웠다.
지난 22일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는 인상파 대표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자화상이 2,240만 파운드(약 394억원)에 팔려 마네의 작품 중 최고 경매가를 갈아치웠다. 야수파를 대표하는 앙드레 드랭의 '콜리우르의 나무들'은 같은 경매에서 1,630만 파운드(약 286억원)에 낙찰돼 역시 드랭의 작품 중 최고가를 다시 썼다.
뉴욕 소더비에서 22일까지 열린 사진경매도 마찬가지다. 풍경 사진의 대가 앤셀 애덤스의 '걷히는 겨울 폭풍,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72만2,500달러에 팔려 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척 클로스의 '9분할 자화상'은 29만500달러, 루카스 사마라스의 '울트라 라지-손'은 19만 4,500달러에 낙찰돼 각각 자신의 사진 작품 최고가를 경신했다. 또 이날 출품된 앤디 워홀의 '자화상-찡그린 표정'은 14만6,500달러로 역시 그의 사진작품 경매가 기록을 경신했는데 곧이어 또다른 사진작품 '자화상-눈을 감고' 가25만4,500달러에 낙찰돼 한 경매에서 연거푸 2번이나 작가 최고가가 깨졌다.
◇우량자산 선호현상=줄을 잇는 작품가 기록경신을 두고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우량자산 선호현상'이라고 분석한다. 미술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가 급락하며 거품이 꺼지는 것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안전 투자처를 물색한 결과다. 2000년대 이후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등 젊은 컨템포러리(contemporaryㆍ동시대미술) 작가가 강세였지만 이 분야는 수익률이 좋은 반면 경기 침체기에는 가격이 급락한다. 반면 인상파를 비롯한 근대미술은 고가지만 경기를 덜 타는 '안정성'이 보장된다.
김순응 K옥션 대표는 "불황과 거품붕괴를 경험한 뒤 수익률보다 안정성을 중시해 '블루칩'으로 회귀하는 우량자산 선호현상이 두드러진다"면서 "침체 후 회복-호황으로 바뀌는 경기 사이클의 교체 시점에서는 트렌드도 바뀌어 당분간 올드매스터(old masterㆍ거장)나 인상파 같은 클래식한 작품이 강세를 띨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오는 29일 서울옥션 경매에는 이중섭의 '황소'가 출품돼 그간 국내경매 최고가 기록인 박수근의 '빨래터' 기록(45억2,000만원) 경신을 노리고 있다. 불황 이후 국내 미술계도 박수근ㆍ이중섭ㆍ김환기ㆍ장욱진 등 근대 거장의 작품이 강세다.
배혜경 홍콩크리스티 한국사무소장은 "세계 시장의 회생은 국내 거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겠지만 그렇다고 한국 작품이 해외 시장에서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