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의료소비자정책관 만들자


보건의료 정책의 목표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 증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 수립 과정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왜 하는가'를 잊어버리기 일쑤다. 특히 이해 관계자가 전문가집단이고 정치력이 강할수록 이해관계 조정이 어렵고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있다. 보건의료 정책, 특히 의약품 정책이 대표적이다. 의약품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것은 국민의 헌법적 권리인 알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약품 가격을 공개하고 국민들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병원에서 받는 처방전에는 의약품 가격이 적혀 있지 않다. 약사들은 '성분과 효능이 같고 가격만 다른' 의약품 중에서 마음대로 약을 바꿔줄 수 있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은 더 문제다. 약국이 일반의약품 가격을 알아서 정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약국은 의약품 진열장을 약사만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같은 종류의 일반의약품이 수십가지 있음에도 약사가 마음대로 약을 골라주고 있다. 국민들은 효능이 같은 약들 중에서 싼 약을 골라 먹을 수 없다. 선진국 반열에 이름을 올린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에게 약값을 알려주자는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주장이 어젠다조차 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건의료 정책 수립 과정에 국민 의견이 반영되는 절차가 마련된 것은 김대중 정부의 일이다. 10여년 밖에 되지 않은 짧은 역사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게 됐고 건강보험 정책을 결정하는 국민건강보험 정책심의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논란도 많이 있었다. 시민단체가 국민의 대표인가에서부터 전문적인 정보ㆍ지식을 갖지 못한 채 이념을 앞세우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풀어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10여년이 지난 지금 환자ㆍ소비자단체의 전문성은 질적으로 많이 향상됐다. 이런 역사와 현실을 감안할 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국민의 입장을 모든 정책에 '일관되게 적극적으로' 반영하는가이다. 법이 없어서 정책 추진을 못하는 상황은 아니다. 이미 국민의 권리는 헌법ㆍ보건의료기본법ㆍ소비자기본법에 명확하게 적시돼 있다. 특히 소비자기본법은 구체적인 법률적 권리로 알 권리와 선택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보건의료행정에 이것만으로 반영하기 어렵다면 '의료소비자 권리 강화를 위한 특별법'제정도 검토해볼 수 있다. 그러나 법보다는 행정 영역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건의료 정책 전반에서 국민의 알 권리와 자기결정권이 침해 당하는 실태를 조사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관리본부가 제공하는 건강ㆍ의료이용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가장 시급한 일은 보건복지부에 이 일을 전담할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건의료정책실에 '의료소비자정책관'을 설치하는 것이 국민의 입장을 반영하겠다는 정부의 높은 의지를 밝히고 정책 수립ㆍ집행 과정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바람직한 방안이다. 또한 '의료소비자위원회'를 장관자문위원회로 상설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도 많은 위원회에 국민의 대표가 참여하고 있지만 그 입장이 다른 주장들에 묻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정책에서 '왜'는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사업을 구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 안에서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어떤 이해 관계자도 이것에 이견을 가지기 어렵다. 그것이 또한 가장 윤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전담할 행정조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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