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물 흐르듯 흘러 세상이 변하고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어도 좀처럼 변할 줄 모르는 것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일부 정치인의 부패와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적 타성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젠 국민 가운데 이들의 개과천선을 기대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검은 돈을 받아 챙기고 들통이 나면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이라고 둘러대는 썩어빠진 정치인이나, 국민의 머슴이면서도 혈세를 착복하거나 낭비하면서 주인인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공무원들이나 국가발전의 걸림돌이요 국리민복의 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함께하는 시민행동(공동대표 이필상ㆍ정상용ㆍ지현)은 이 같은 공무원들의 혈세 낭비를 시민의 힘으로 감시하고 방지하고자 지난 2000년 8월부터 거의 달마다 정부 각 부처, 지방자치단체, 정부지원단체 등의 예산낭비 사례 가운데 최악의 경우를 선정하여 `밑빠진독상`을 수여해왔다. 지난 3년여간 이 단체는 26회에 걸쳐 밑 빠진 독상을 선정, 시상을 통해 약 4,400억원의 혈세낭비를 막는 대단한 업적을 기록했다. 부수적으로는 시민의 참여의식을 높였고, 예산절감의 필요성을 인식시켜왔다. 또한 제도개선 등 액수로 환산하기 힘든 큰 성과도 거뒀다. 반면, 이 단체에 의해 밑빠진독상 수상자가 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은 불명예스러운 시상에 따른 체면 손상 때문에 시상에 반발하거나 아예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에 의해 제24회 밑빠진독상 수상자로 결정된 건설교통부의 경인운하사업만 막으면 혈세낭비를 1조5,000억원이나 막게 된다고 한다. 건교부는 이미 지난 2001년에 시화호방조제건설에 6,220억원을 낭비한 빛나는 공로(?)가 인정돼 제7회 밑빠진독상을 받은 바 있으며, `비상하지 않는` 전주신공항건설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제11회 밑빠진독상을 수상한 적도 있으므로 3관 왕의 상처뿐인 영광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 동안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선정한 역대 밑빠진독상의 주요 내용을 보면 귀중한 혈세가 낭비될 뻔한, 참으로 한심한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하남시의 국제환경박람회 개최, 제일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감위, 450억원의 예산을 낭비하려는 익산시의 보석박물관, 70억원을 들여 세우겠다는 `천년을 후회할` 새천년의 문, 24조원의 공적자금을 휴지로 만든 금감위, 수백억원 예산낭비가 예상되는 충북 청원군의 초정약수스파텔, `밑빠진 유람선` 테즈락호를 운영한 부산시와 (주)부산관광개발, `한송이 무궁화꽃을 피우기 위해` 무려 17만원씩을 쏟아 부은 행자부, 5조원 이상의 예산이 낭비될 새만금방조제를 입안한 농림부, 빚을 내서 마련한 자기 땅을 되사들인 강원 속초시의 청초호유원지사업, 부산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 무용지물이 된 국회의 전자투표장치, 고위공직자의 노후보장을 위한 양로원이 된 한국과학기술재단, 직무유기로 근로복지재정을 축낸 근로복지공단, 쓰레기가 되어버린 음식물쓰레기감량기기사업의 환경부와 지자체, 산업기술재단에 500여억원을 부당지원한 산자부, 원격제어에어컨 지원사업에 헛돈을 쓴 한국전력, 전국단위교육행정시스템에 503억원을 낭비한 교육인적자원부, 기업구조조정기금 투입을 눈먼 돈으로 만든 산업은행, 245억원을 투입해 연간 6억원의 유지비가 드는 까닭에 `예산 낭비를 노래하는` 경기 고양시의 노래하는 분수대 등이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이러한 눈부신 활약은 납세자소송제도 입법화에도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지난 8월 청와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마련한 새 정부의 재정ㆍ세제 개혁 이행방안에 납세자(국민)소송제 도입이 포함된 것이 좋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2004년부터 2~3년 사이에 법제화 및 시행이 예정된 납세자소송제는 법에 어긋나거나 세금을 낭비하는 정부정책에 대해 국민이 소송을 통해 제동을 걸 수 있는 바람직한 제도이다. 세금을 내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원고가 되어 정부나 지자체, 정부투자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니 이 제도가 정착되면 혈세낭비도 그만큼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황원갑(소설가ㆍ한국풍류사연구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