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19일] 신미양요 발발

미국이 쳐들어왔다. 1871년 신미년에. 1866년 8월 무장한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강제로 통상을 요구하다 평양 군민의 공격에 불탄 사건이 원인이었다. 대(對)아시아 팽창주의정책을 추진하던 미국은 이를 응징하고 조선과 통상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1871년 강화도로 침범했다. 아시아 함대 사령관 J 로저스가 이끄는 조선원정군(군함 5척, 함재대포 85문, 해군ㆍ육전대원 1,230명)이 5월16일 일본 나가사키항을 출발, 5월19일 남양만에 도착함으로써 신미양요의 서막이 오른다. 미군은 서울의 관문인 강화도해협 수로의 측량과 정찰을 목적으로 군함 두 척을 일방적으로 파견했다. 당시 강력한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은 포격을 가해 미군을 물리쳤으나 미군은 이를 빌미로 오히려 조선정부에 사과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조선이 이에 응하지 않자 미군은 포함 두 척을 앞세우고 육전대원 644명을 강화도 초지진에 상륙시켜 이곳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이양정책을 이기지 못하고 미국의 아시아 함대는 무력을 앞세운 조선의 개항을 단념한 채 아무런 성과도 없이 7월3일 철수한다. 조선은 이 사건을 계기로 더욱 문을 굳게 닫는다. 이로써 조선의 역사가 몇십 년 뒤로 후퇴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흥선대원군은 전국 각지에 ‘서양 오랑캐가 침범해도 싸우지 않는 것은 나라를 파는 일’이라는 내용의 척화비를 세웠다. 국제사회는 냉혹한 자국이기주의 논리가 지배한다. 부모자식간에도 돈 때문에 등을 돌리는 세상인데 하물며 나라끼리야 오죽할까. 맹방이라고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언제 서로 등을 돌릴지 모를 일이다. 험한 꼴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힘을 가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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