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 세대는 쉽게 포기하는 성향이 있어요. 생존하기 위해 인간이 하는 행위치고 아름다운 게 없지만 그래도 살아야죠. 아름답고 멋진 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두 청년이 곡절 끝에 탈출한다는 줄거리의 블랙코미디 ‘내 심장을 쏴라’로 제 5회 세계 문학상을 거머쥔 정유정(43ㆍ사진) 작가는 ‘88만원 세대’라는 별칭이 붙은 20대 젊은이들의 무기력증을 안타까워하며 입을 열었다. 어린시절부터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그는 의대진학을 원하는 부모의 반대를 꺾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간호사가 돼 5년간 중환자를 돌보고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서 심사업무를 9년간 했다. 간간이 글을 써 왔지만 전업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못했다는 그는 “남편에게 내 집 장만을 하고 나면 소설을 쓰겠다고 선언했다”며 “2001년 집 장만 한지 2달 만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집에 들어앉았다”고 말했다. 제도권의 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글쓰기를 터득한 그는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 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공포소설의 거장 스티븐 킹과 추리소설의 대가인 레이몬드 첸들러를 좋아한다는 그는 “스티븐 킹에게는 정직하고 힘있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레이몬드 첸들러에게는 스타일을 배웠다”며 “블랙 코미디를 쓰게 된 것도 이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모티브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간호사라는 이색 경력에 걸맞게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한 환자들과 일주일간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을 밀착 취재 했다. 정씨는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은 교도소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불가능하다”며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나락의 장소가 바로 폐쇄병동”이라고 말했다. 작품 속 501호와 502호 환자들은 모두 일주일간의 취재를 통해 만들어진 인물들이다. 늦게 등단해 부지런히 글을 쓴다는 그는 “정식으로 소설 쓰기를 배우지 않은 터라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단편으로 압축하는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며 “당분간은 장편을 계속해서 쓸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작품은 가족을 주제로 한 코믹 스릴러. 그는 “가족은 힘들 때 든든한 힘이 되지만 때로는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가족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며 “우리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