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은행채 공시제도 겉돈다

신고액과 실제 발행액 수천억씩 차이… 투자자 신뢰 무너져<br>채권자 보호 취지 무색… "허위 공시땐 재산상 손실 우려도"


은행 경영 투명성 제고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은행채 공시제도가 겉돌고 있다. 시중은행이 당초 발행하겠다고 신고한 금액과 실제 발행한 금액이 수천억원씩 차이가 나는 등 유가증권신고서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무너지면서 올바른 투자정보 제공이라는 공시제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31일 금융계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당초 8월에 5,000억원의 은행채를 발행하겠다고 감독 당국에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실제로는 1,000억원 발행에 그쳤다. 하나은행도 1조3,000억원의 은행채를 발행하겠다고 했다가 9,400억원만 발행하는 등 상당수 은행들이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금액을 지키지 못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올바른 공시는 주주는 물론 채권자, 잠재 투자자 등의 거래행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결과적으로 허위 공시로 판명 날 경우 이들 이해관계자에 재산상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은행채를 매입하는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은 공시된 발행 예정물량 등을 감안해 금리 등을 예측해 투자행위를 결정하는데 공시와 다른 은행채 발행이 이뤄지면 시장에서 불리한 거래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은행권은 이에 대해 수신 역할을 하는 은행채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여타 기업의 회사채 같은 공시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감독 당국은 은행도 상장 주식회사로서 투자 대상이 되는 만큼 당연히 채권 발행에 따른 은행채 공시를 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감독 당국은 다만 수시로 발행되는 은행채의 특성을 감안해 발행 때마다 이사회를 열지 않는 대신 한번 이사회를 열어 한꺼번에 수개월치의 발행 예정물량을 신고하도록 하는 일괄 신고서제도를 허용하는 등 은행권에 편의를 봐주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의 일괄 신고서 물량도 하반기 은행채 만기 도래 물량 등 수급 사정을 감안할 때 신뢰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우리은행은 최근 제출한 은행채 발행신고서에서 9월부터 오는 12월까지 월별로 7,000억원씩 2조8,000억원을 발행하겠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같은 기간 만기 도래하는 은행채 물량만 3조4,800억원으로 발행 예정금액이 차환 발행물량에도 못 미치고 있어 신고서 자체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은행채금리가 수급 불안으로 급등하자 실제 발행 예정금액을 모두 공시할 경우 수급 불안 기대감이 커지면서 금리가 추가 급등할 것으로 보고 은행들이 제대로 된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그네들의 특수성만 주장하며 투자정보 제공을 통한 투자자 및 채권자 보호라는 공시제도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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