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6월 1일] <1711> 페니언 침공


1866년 6월1일 0시10분. 페니언(Fenian) 병사들이 나이아가라강을 건넜다. 페니언이란 영국의 식민통치에 대항하기 위해 1848년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비밀결사. 감자 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인들도 '페니언 형제단'을 결성해 행동에 나섰다. 마침 남북전쟁에서 남부를 지원했던 영국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던 상황. 페니언 형제단은 미국의 묵인 아래 군대를 키웠다. 캐나다를 공격해 영국의 아일랜드 철수를 유도하려는 페니언 형제단은 한달 전 소규모 침공에 실패했던 경험을 살려 대규모 병력을 모았다. 테네시와 켄터키ㆍ오하이오 등 3개 주에서 집결한 3,000여명 중 강을 건넌 병사는 약 1,100여명. 북군의 군복와 장비를 갖춘 채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초록색 군기를 든 1진 650여명은 전투경험을 살려 이튿날 리지웨이 마을에서 캐나다 민병대 850명과 마주쳐 승리를 거뒀다. 페니언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이어진 이리항 전투에서 소수의 캐나다 민병대에 저지되고 영국 정규군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방관하던 미국이 페니언군의 증원을 막고 무장을 해제시키자 페니언들은 소득 없이 돌아왔다. 한달 뒤 프랑스계 지역에 대한 공격의 결과도 마찬가지. 기대와 달리 프랑스계와 아일랜드계 캐나다인들의 내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페니언의 캐나다 침공은 무위로 끝났지만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첫째는 100년이 넘는 저항. 페니언들이 처음 사용한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이름 아래 아일랜드 애국자들은 피나는 독립투쟁을 벌였다. 두 번째는 캐나다의 통합. 분열됐던 각 주는 외부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연방통합에 합의, 1867년 3월 캐나다 자치연방으로 합쳐졌다. 리지웨이 전투는 '캐나다를 탄생시킨 전투'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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