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선우후락

요즘 내 집무실에는 외국의 경제학자가 던져놓고 간 「한국의 3대 불가사의」라는 화두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 가운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IMF태풍의 중심권에 있으면서도 국민적 위기의식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업자 수가 150만명을 넘으면 사회질서 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정부는 판단했다.그러나 그 위험수위를 훨씬 넘는 실업자가 발생했음에도 특별한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단다. 또한 수출은 10년 만에 최악이라면서 외국산 사치성 소비재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며 높은 이자의 외채를 빌려와 아슬아슬하게 외환위기를 모면해가고 있는 판에 공항 대합실은 달러를 들고 외국여행에 나서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모습 등이 외국사람의 눈에는 납득할 수 없는 불가사의로 보이는 것이다. 그 사람은 위기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낼 때보다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리라 짐작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실제 모습을 보니 흥청망청이다. 실업자가 200만명을 넘는데도 사회적 동요가 없는 것은 이처럼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태만함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국민의 상황인식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위기상황이 극복될 것이라 예측하는 정부의 낙관적 자세가 심히 걱정이란다. 국민이 위기의식을 갖지 않고 흥청망청하는 것은 정부의 낙관론 때문이며 그러한 태도는 IMF상황을 극복하는 데 결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우후락(先憂後樂)」이라는 말이 있다. 근심하는 마음이 앞서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이 편한 사람은 진작에 오늘을 미리 걱정하고 준비했음이다. 반대로 오늘이 어려운 사람은 동화에 등장하는 베짱이처럼 즐기기만 했을 뿐 훗날을 준비하지 않았음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앞의 것에만 골몰하는 버릇이 있다. 이익을 찾아도 당장 눈앞에서만 찾고 눈앞이 즐거워야 행복으로 여긴다. 그러다 보니 늘상 내일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도시계획이 세계에서 가장 엉망인 것도 그 때문이며 신설된 도로나 건물을 매일같이 뜯었다 고쳤다 하는 것도 눈앞의 것에만 골몰하여 빨리빨리만 외쳐댄 탓이다. 몇해 전 해외교포 자녀들의 교육실태를 파악하고자 LA를 방문했을 때 「한국인의 행복은 눈앞에 있고 미국인의 행복은 산 너머에 있다」는 말을 듣고 쓴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새롭다. 미국인들은 세계 제일의 부를 축적했음에도 훗날을 걱정하고 후세대를 걱정하여 절제하는 생활을 즐기는 데 비해 한국인들은 흥청망청이어서 한국인이 아니면 LA지역의 유흥업소 중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는 얘기다. 모두가 자랑스럽지 못한 말들이지만 창피를 무릅쓰고 늘어놓는 까닭은 이러한 점들부터 고쳐가야 현재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임을 이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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