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12월 27일] 품질검사 '님비현상' 안돼

이번 수능시험에서 샤프심이 쉽게 부러져 수험생들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사실을 확인해 보니 조달청이 구매한 것은 아니지만 시중가격의 4분의1 수준에 납품을 받았다고 한다. 싼 값에 공급하다 보니 외국산 저질품이 납품됐다. 가격은 지난해보다 개당 17원 싸져 예산은 약 7%, 1,400만원 정도 절감됐지만 수험생들이 느낀 불만족을 액수로 환산하면 몇 곱절이 되지 않았을까. 소비자와 수요기관은 좋은 품질을 원하지만 공급자는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서로 입장 간에 충돌이 발생한다. 낮은 가격만으론 안 통해 우리가 물건을 살 때는 가격과 품질을 동시에 고려한다. 낮은 가격만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싸진 만큼 내용연수가 짧아지거나 불량품이 많아지고 또는 필요한 때에 납품되지 못한다면 결코 싼 것이 아니다. 특히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는 바람에 저가공급이 일반화돼 있다. 잉여공급량이 많기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가격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경쟁시장이 떨이시장처럼 변질됐고 떨이가격이 정상 시장가격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변화에 대응해 조달청은 가격보다 품질을 중시하는 조달행정을 강조해왔다. 우리의 높은 인건비 수준에서 중국ㆍ미얀마 등의 제품과 가격으로 경쟁해서는 이기기 어렵다. 따라서 조달청은 철저한 입찰자격 확인과 납품된 제품의 품질검사 강화, 계약이행상황 평가와 평가결과의 차기계약 반영 등을 추진하고 있다. "20세기가 생산성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품질의 시대다. 품질은 시장을 평화적으로 점령하는 가장 효율적인 무기"라는 조지프 주란 박사의 말이 절실히 와닿는다. 품질조달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납품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조악한 외국제품의 국내조달시장 잠식을 막기 위해서다.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정책방향이라고 누구나 인식은 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품질검사가 강화되자 불만과 비난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품질검사 비용 때문에 사업을 못 하겠다"는 푸념에서부터 "국민세금으로 구매하는데 싼 것을 사야지 왜 품질이 우수하다고 비싸게 주고 사느냐"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자기가 계약시에 제시한 규격보다 저질의 제품을 납품하면서 "그래도 KS규격보다는 높은 수준인데 이를 문제 삼으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억지를 쓰는 경우도 있다. 지난 1985년께 독일 유학시절 독일의 버스나 기차에는 검표원이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 연유를 알아본즉 평소에는 단속을 하지 않지만 불심검문에서 적발되면 요금의 60배를 부과하는 일벌백계의 범칙금 시스템에 해법이 있었다. 무임승차에 걸릴 확률은 37회에 한 번 꼴이라고 들었다. 결과적으로 무임승차 승객들이 정상적인 요금을 내는 시민들에 비해 2배에 가까운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조달청 품질검사도 '검사부담은 줄이되 불합격에 대한 제재는 엄격히'하는 독일의 검표방식을 벤치마킹하고자 한다. 업체 스스로 품질강화 노력을 정부주도 직접검사의 점진적 축소ㆍ폐지, 전문검사위탁기관의 검사주기 완화, 물품 성격에 맞도록 품질검사의 범위 신축조정, 성실업체 검사면제, 검사수수료 하향 조정 등 필요이상으로 피검업체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기준과 비용을 줄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반면 불량품으로 판정될 때는 반품조치 등 강한 처벌은 물론 차후 계약에도 몇 배의 더 큰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업계 스스로 품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제품개발과 생산 단계부터 품질관리를 강화해나가도록 유도하는 데 목표가 있다. 품질관리는 기본적으로 자기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업체 스스로 하는 것이다. 조달청도 업계 스스로 품질을 관리하기를 희망한다. 내년에 조달사업 관련 규정을 개정해 '자가품질관리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자가품질관리에 요구되는 조건과 절차를 따르는 업체는 품질검사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자가품질관리제도'와 '독일식 검표방식'이 품질검사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자신의 제품만은 제외되기를 바라는 품질검사 '님비현상'을 치유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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