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3일] <1258> 유레카 방책 봉기


유레카 타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주거용 건축물(높이 297.3m)이다. 위치는 호주 멜버른. 해마다 이맘 때면 초고층빌딩 주변에서는 축제가 행해지고 화려한 불꽃놀이가 밤을 수놓는다. 호주 민주주의의 시발점이라는 1854년 유레카 방책 봉기(Eureka Stockade)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호주 역사를 통틀어 유일한 무장 폭동인 이 봉기의 배경은 골드 러시. 1851년 대규모 금광이 발견된 빅토리아주에 몰려든 채굴업자와 광부들에 대한 영국의 가혹한 압제가 반발을 불렀다. 광부들의 요구는 크게 네 가지. ▦과도한 탐사허가세 인하 ▦경찰의 폭력적 징세절차 철폐 ▦국왕 소유지에 대한 탐사금지조치 해제 ▦선거권과 피선거권 허용 등을 담은 청원서를 줄기차게 제출했으나 답을 못 얻었다. 쌓여가던 불만은 한 채굴업자가 피살되고 살인용의자인 식민관리들이 무죄 석방된 그 해 10월 터져나왔다. 장례식에 운집한 1만5,000여명의 광부들은 ‘개혁동맹’을 결성하고 유레카 금광 근처에 방책을 쌓았다.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별인 남십자성을 그린 깃발을 내걸고 농성에 들어간 광부 1,400여명과 진압 군경 276명은 12월3일 총격전을 벌였다. 15분 만에 끝난 교전 결과는 정부군의 압승. 광부 22명과 군경 6명이 죽고 114명의 광부가 감옥으로 끌려갔다. 봉기 이후 영국은 광부들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줬다. 식민지 전역이 들썩거렸기 때문이다. 봉기가 확산돼 호주가 미국처럼 독립할 경우 거대한 금광을 상실할 수 있다고 판단한 영국은 서둘러 유화책을 내놓았다. 연행된 광부들도 전원 무죄로 풀려났다. 광부들의 분노가 없었다면 호주의 자치와 민주화는 더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경제적 불만에 대한 광부들의 피가 호주의 기반을 닦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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