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크나큰 변화를 맞았다. 그 변화의 핵심은 법에 대한 시각이 엄청나게 변했다는 것이다. 그중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클린 핸드(clean hand)의 원리가 있다. 내용인즉 ‘남을 비판하려면 내 손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래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후보자의 검증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프라이버시 침해는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것이 국제적 시각이다. 대선 후보이기 때문에 도덕적 검증을 해야 한다고 하고 있으나 지난 21일 김유찬씨의 기자회견 장면은 그 상식이 의문시되며 보기에도 민망스러운 것이었다.
선거때만 되면 후보들 헐뜯어
그것은 지난 대선 때 병풍 녹음 시비로 국민을 우롱한 예와 너무나 흡사했다. 왜 하필이면 선거 때가 돼서 의문을 제기하는지 그 동기도 불순하게 느끼게끔 한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낡은 논리로 남을 헐뜯으려고 하는 것인지 그 맹점을 보게 된다.
오늘날 어느 세계 문명국에서 녹음이 증거능력이 있다고 말하는가. 녹음이나 사진은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수사에 참고는 하지만 증거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데도 다시 전화녹음까지 들고 니온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이를 왈가왈부하는 것도 얼마나 우리의 법 운영이 정체되고 경직돼 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19세기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오늘 우리 주변에 벌어지고 있음은 가관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사라진 논리가 우리에게는 아직도 먹히기에 서글픈 것이다. 올 12월의 대선은 선진국을 지향하는 나라답게 치러지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의 소망이다.
김씨의 말은 신빙성도 희박하거니와 설령 그 말이 다 맞다고 치더라도 도덕성을 말하는 것은 확인된 다음의 일이다. 전후 시민의 자유권 보장이 확립되고 인간 존중과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 존중되는 법 특질상 마구 헐뜯는 이러한 일은 용납되지 않는 행위이다. 전후 세계는 법구조도 크게 달라졌으며 개인을 국제법의 주체로 하고 평시 전시를 불문하고 개인을 보호하고 있다. 인권은 그 내용에 있어서 일반 보통시민이건 대통령 후보건 지위를 불문하고 프라이버시에 관한 한 누구나 똑같다. 대통령 후보라서 특별한 것이 따로 없다. 대선 출마자라고해서 프라이버시의 침해행위도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상식 이하의 행위이다. 이는 우리 법의 후진성을 말해주는 것으로 추태에 가깝다.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그것도 지난날 상사로 모셨던 분을 궁지로 몰고 가려는 비판은 후보의 도덕성보다 더 도덕적이 아니며 예의에 어긋난다. 조선시대의 선비도 ‘군자는 남을 따라 내 지조를 바꾸지 않아야’ 하고 ‘싫고 밉다고 모함하지 않아야 하고’ ‘남의 실수나 흠을 들춰내지 않는다’고 했다. 정치의 이념이나 이해가 달랐어도 최소한도의 예의는 지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도리가 아닌가 본다. ‘예의가 없으면 상하가 무너진다’고 성현도 말했지만 ‘예는 나라의 근간이다’고 했다. 국민의 축제로 치러져야 하는 대선을 앞두고 이러한 모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보기에도 안 좋고 따분하기 그지없다.
이미 문명국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의 원칙과 개인 데이터의 국제 교환을 한 지 오래며 여기서도 가이드라인을 정해 그 사례규범 및 상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구주공동체(EC)에서는 프라이버시 8원칙, 즉 첫째, 자료수집 한계의 원칙 둘째, 자료의 질적 수준 유지원칙 셋째, 명확한 사용 목적원칙 넷째, 사용 제한의 원칙 다섯째, 보안장치 유지원칙 여섯째, 정책 공개의 원칙 일곱째, 개인 참여원칙 여덟째, 책임원칙을 정하고 이를 어겼을 때의 법적 대응까지 수립하고 있다.
프라이버시 존중 원칙 지켜야
이 원칙은 철저히 지켜지고 개인을 보호하고 있다. 우리와 같이 제멋대로 상대를 떨어뜨리기 위해 말하는 법은 보기 힘들다. 지난번 병풍사건에서 보듯 개인의 신상 데이터나 프라이버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일들은 상상하기 어렵다. 한 시민의 인권이나 대선 후보라 해서 인권이 마구 짓밟히는 나라가 문명국이랴.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며 우리나라의 인권 존중은 편의에 따라 실종되고 있음에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이일을 계기로 역사의 새 지평을 여는 신선한 새 출발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