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내년도 예산안을 접하면서

이만우 고려대 정경대 학장

시장 경제를 기본 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예산은 정부의 경제활동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경제운용 계획, 즉 정부가 국가를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가의 수량적인 계획표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높다. 9월 정기 국회를 예산국회라고 일컫는 것도 이러한 중차대한 과제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은 한마디로 적자ㆍ팽창 예산이라는 꼬리표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건전재정의 복원과 경기진작이라는 상반되는 과제를 놓고 예산편성의 주무부처인 기획예산처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경기양극화 현상의 심화 및 소비ㆍ투자 부진, 수출 증가율의 둔화 등을 감안할 때 잠재 성장률을 능가하는 9.5% 증가율의 내년도 예산안은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가 계획한 일반회계 국채발행규모 6조8,000억원도 내년도 실질경제 성장률 5%, 민간소비 증가율 3.8%, 소비자 물가상승률 2.5%, 수출 증가율 10% 등 지나치게 낙관적 경기예측에 기초한 것이어서 세입예산 부족에 따른 적자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년 예산을 팽창 예산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부가 약속한 오는 2008년 균형재정 달성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잠재성장률의 하락과 각종 세율 인하로 인해 세수기반은 취약해진 데 반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복지지출의 증가, 대형국책사업, 자주국방 등의 재정수요를 고려할 때 수년 내 건전재정 복원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매년 반복되고 있는 경기진작을 위한 추경예산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건전한 재정의 유지는 국내외 경제여건 악화시 대처능력을 높이고 개방화ㆍ국제화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에 대한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했음은 외환위기를 체험하면서 절감한 바 있다. 통일ㆍ고령화 등에 따른 장기 재정위험을 감안할 때 현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지속적인 안정적 성장을 위해 바람직하다. 외국의 경험을 보더라도 건전재정 복원을 위해서는 세입확대보다 지출통제가 더욱 중차대했음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년도 예산안에서 재정건전성을 추구하면서 국정과제가 효과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 방안의 모색에 심혈을 기울였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어려운 재정 여건을 감안해 불요불급한 대형 국책사업을 장기 추진과제로 미루는 방안도 마련돼야 하며 국가균형발전계획 지출 증가율 17.8%, 사회복지비 지출 증가율 14.4% 등은 우리의 경제 현황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내년에도 경기회복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산업ㆍ중소기업 분야 예산을 1.6% 감소한 것과 사회간접자본 투자 증가율이 1.7%수준에 머문 것은 이유야 어떠하든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재정은 규모가 크고 교육재정 확대가 재정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투입확대보다는 효율성 제고에 노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GDP대비 공교육비 비율은 우리나라가 7.4%로 OECD 평균인 6.5%를 상회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건비 및 학교시설에 대한 투자 위주에서 교육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분야에 예산을 우선적으로 배정하고 아울러 경쟁원리의 도입이 요구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에 특기할 만한 사안은 ▦국가 재정운용 계획을 수립해 단년도 위주 재정운용을 중장기적 재정운용으로 전환했다는 점과 ▦예산 편성에 있어서 총액배분 자율편성 방식을 도입했으며 ▦성과관리제도를 도입해 재정사업에 대한 사후 평가 및 환류기능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재정 제도의 개혁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중장기적 재정운용안의 마련에 모든 부처가 참여하는 내실 있는 운영도 요망된다. 특히 실현가능한 실질 성장률을 기초로 해 국가재정운용 계획을 수립할 때만이 재정정책의 예측가능성이 제고될 수 있음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재정학자인 샤피로는 중장기 재정운용 계획에서 분야별 재원배분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 인프라 및 연구개발 투자, 교육과 직업훈련 등 노동자와 기업의 생산성을 제고하는 미래 지향적 예산이 국방비, 공무원 인건비, 사회보장비 등 소모성 예산이나 재정 적자분에 대한 이자 및 공적자금상환 등의 과거 지향형 예산보다 그 비중을 점차 늘려야 재정의 성장 기여도가 증가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예산구조도 장기적으로 샤피로 논리에 부합 하게끔 예산 당국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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