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긴급회의가 열렸다. 기사회 임원회의. 결론은 조훈현의 반집 패배였다. 조훈현은 다시 도전권을 따내기 위해 몇판 더 악전고투를 해야 했다. 5승2패의 동률을 기록한 사람이 3명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도전자가 되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심신이 완전히 지친 상태였다. 춘란배를 위한 베이징 원점, 후지쯔배를 위한 도쿄 원정이 줄줄이 계속되었다. 농심배 예선까지 겹쳐져 있었다. 견디다 못해 조훈현은 한국기원 기전부에 왕위전 도전5번기의 일정을 며칠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7월 14일 아침 전남 해남. 왕위전 5번기 제1국이 예정대로 시작되었다. 아침 10시가 되어도 도전자 조훈현은 대국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창호 혼자 바둑판 앞에 앉았고 진행관계자와 해남 유지들이 그 앞에 앉아 기다렸다. 10시 30분. 여전히 조훈현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서야 한국기원 직원이 새벽에 조9단의 부인 정미화여사가 전화를 했다는 것을 밝혔다. 갑자기 몸살이 나서 대국 참가가 어렵게 되었다는 전화였다는 것. 그 전화를 받은 직원은 어떻게 해서라도 오전 11시까지는 대국장에 나오시라고, 그러지 않으면 기권패가 된다고 말했다는 것. 이창호는 주저하며 말했다. “이 대국을 연기해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선생님이 회복되실 때까지 연기하는 게 어떨까요.” 오전 11시. 조훈현의 기권패가 선언되고 말았다. 닷새 후에 열린 제2국에서도 조훈현은 힘없이 패했다. 다시 엿새 후에 열린 제3국에서는 49수라는 단명기로 조훈현이 불계패. 그해의 왕위전은 너무도 재미없이 끝나 버렸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