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재계가 재벌정책을 놓고도 험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 개정 입법예고안을 발표하는 일정에 맞춰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포문을 열었다. 전경련은 이날 “대기업부당내부거래 조사과정에서 활용되는 공정위 계좌추저권 연장을 결사 반대한다”고 밝혔고 강철규 공정위원장은 “재벌은 정직해야 된다. 그래야 대화가 된다”고 받아쳤다. 재벌들이 강위원장과 협의하는 과정에서는 현 정부의 뜻을 수긍한다고 밝히면서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공정위의 재벌정책에 반기를 드는 이중적인 행태를 빗댄 것으로 풀이된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빠진 공정거래법 개정안=공정위는 이날 지난 5월9일 구성했던 `시장개혁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에서 합의된 사항을 중심으로 총9개항목의 공정거래법 개정 입법예고안을 발표했다. 이 입법예고안은 20일부터 20일간 입법예고기간을 거쳐 올 9월말쯤 정기국회에 상정된다.
이번에 발표된 입법예고안의 가장 큰 특징은 참여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출자총액제한제도 개정안이 빠졌고, 계좌추적권도 항구화를 추진하던 공정위입장에서 후퇴, 5년 연장하는 쪽으로 마무리됐다는 점. 경제침체기에 개혁논리가 재벌논리에 밀렸다는 인상을 풍기는 대목이다. 강 위원장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연내입법 가능여부는 9월말까지 TF가 결론을 내면 그때 가서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재계는 물론 재경부까지 반대하고 있어 연내입법은 난망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재경부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당분간 현행 기본틀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연내 입법이 무산되면 앞으로 1년간 현행체제가 유지된다.
이날 발표된 공정거래법 개정 입법예고안은
▲지주회사제도 보완
▲기업결합심사제도 개선
▲계좌추적권 5년 연장
▲손해배상청구제도 개선 등을 담고 있다. 또
▲부당한 공동행위(담합) 규정 보완
▲공정위원 제척사유강화
▲조사권 남용금지 및 조사연기 신청조항 신설
▲분할회사 등에 대한 과징금 징수의 법적근거 신설
▲법 위반사실 공표명령 정비 등 총 9개 항목을 담고 있다.
◇재계, `계좌추적권 연장 결사 반대`=재계는 계좌추적권 항구적 보유 대신 5년연장안을 내놓은 공정법 입법예고안 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경하게 몰아부치고 있다. 공정위는 공정법 입법예고안 발표 당일 맞춰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는 행태에 대해 못마땅해 하고 있다. 강 위원장이 전경련이 같은 날 공정법 개정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는 보고를 받을 직후 이례적으로 “재계도 자신의 뜻을 밝힐 수는 있겠지만 정직해야 할 것”이라며 “그래야 대화가 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공정위가 계좌추적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일을 못했느냐”며 “(계좌추적권의 연장은)한시규정에도 위배되는 것으로 입법 저지를 위해 총력 투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부회장은 “도대체 공정위가 뭐하는 기관인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고, “30년전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현행 공정거래법은 시대착오적이며 총액출자제한제 등도 폐지돼야 한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정승량기자,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