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중소기업(다시 일어서는 부도기업)

◎“고통도 기쁨도 함께…” 노사 한마음◎마이크로/관리·영업직 구분없이 전천후 작업 종합문구업체인 마이크로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의 볼펜류 수출업체였다. 보수적인 문구업계에 공격적인 영업전략을 구사, 돌풍을 일으킨 주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3세대 수성펜으로 불리는 탱크펜의 개발에 나서면서 이 회사는 올 2월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독일과 일본 등 문구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생각에서 탱크펜의 개발에 5백억원이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게 화근이 된 것이다. 그러나 부도의 원인이 된 바로 그 탱크펜이 이번에는 역으로 재기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탱크펜은 전세계 필기구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탱크(Tank)타입의 펜으로 필기감이 탁월하고 필기 거리가 기존펜에 비해 2배 이상 길어 올들어서만 7천만달러 어치가 수출됐다. 특히 부도 이후 생산직원의 이탈로 일손이 달리자 관리직원들도 조립과 포장 등 생산작업에 나서는등 근무영역을 허문 전천후 근무를 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과 성과 덕분으로 굳게 문을 닫아 걸었던 은행들도 점차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9월에는 대구은행으로 부터 자금대출을 받아 설비증설에도 나섰다. 그러나 아직도 갈길은 멀다. IMF 한파가 새로운 장애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직원들은 부도주범인 탱크펜을 재기의 주역으로 탈바꿈시킨 역량과 영역을 구분하지 않는 전천후 근무로 IMF 한파와 또한번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엘칸토/매장 매각 등 몸집줄이기 박차 재기를 믿는 직원들은 침착하다. 위기극복을 위한 행보도 신속하다. 지난 9일 (주)엘칸토(대표 강주훈)가 자금난으로 화의신청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엘칸토 매장은 순식간에 상품권을 들고 몰려든 고객들로 붐볐다. 그러나 매장 직원들은 어느때보다 침착하고 친절했다. 재기를 믿기 때문이다. 본사 관리직 사원들은 자발적으로「회사를 살리기 위한 작은 모임」을 결성, 회사정상화에 지혜와 힘을 모았다. 휴일 매장지원 근무도 이 모임에서 발의된 것으로 1백50여명의 사원들은 지난 20일과 21일 양일간 시내 각 매장에서 고객들을 맞았다. 사원들은 또한 자발적으로 상여금 2백% 반납을 결의했으며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야근시 저녁 메뉴는 컵라면. 경리부의 임영희씨는 『휴일에도 근무해 피곤하기는 하지만 나를 희생해서 회사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무언들 못하겠느냐』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기독교 사풍을 갖고 있는 엘칸토는 지난 13일 신우회 주최로 경기도 하남시 제화공장에서 4백여명의 사원 및 가족이 모인 가운데 회사정상화를 위한 특별기도회를 갖기도 했다. 정주권 공장장은 『강당이나 교회도 있지만 굳은 각오를 보여주기 위해 눈 내리는 운동장에서 기도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엘칸토는 현재 일부 매장매각 및 조직슬림화를 통한 구조조정을 추진중인데 연내 재산보전처분 획득, 그리고 내년초 화의신청 등의 수순을 밟을 계획이다. ◎다산금속/직원들 업체설득 정상거래 얻어내 동파이프 전문제조업체 다산금속공업(대표 윤영상)은 구사대 역할이 가장 밝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발휘된 대표적 케이스. 다산금속 직원들은 지난달 13일 무리한 투자와 종금사들의 자금회수 압력에 회사가 부도를 내자 즉각 구사협의회를 구성, 채권단 압류를 몸으로 막았다. 직원들은 또 거래업체를 찾아 다니며 회사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 결과 거의 모든 거래처에서 계속 거래할 것을 약속했다. 특히 중단없는 제품생산을 위해 공장의 정상가동에 힘을 쏟았다. 구사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영혁 차장은 『상여금을 자진 반납하고 평소 월급의 70%밖에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전직원이 재기에 대한 확신을 갖고 회사살리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직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지난 6일에는 서울지방법원으로 부터 재산보전처분을 받았으며, 주거래은행인 산업은행과 외환은행으로 부터도 구두로 화의동의를 얻어 냈다. 다산금속은 현재 대대적인 조직재편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본사의 경우 경리, 총무, 기획부를 관리부로 통폐합하고 8개부서로 운영되던 공장도 관리팀, 생산팀, 생산지원팀 등 3개팀으로 줄였다. 수출 확대에도 전력을 추구하고 있다. 중구 청도의 현지법인을 풀가동하는 한편, 조직재편에도 불구하고 미국 뉴욕지사 인원은 그대로 유지시키기로 했다. ◎셰프라인/부도이후 주문폭주 일손 모자라 부도 이후 일감이 늘어 오히려 바빠진 업체가 있다. 바로 지난 4일 최종부도 처리된 주방용품 전문업체 (주)셰프라인(대표 김명석)이다. 셰프라인의 충남 아산, 예산공장에서는 24시간 풀가동을 위해 관리직, 생산직 구분없이 3교대 연장근무에 돌입했으며, 내년 1월말까지는 휴일도 잡아 놓고 있지 않다. 내년 6월까지 주문받아 놓은 수출 물량이 9백만달러에 이르는데다 부도 이후 주문받은 물량 역시 80만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연말 대통령 하사품으로 3만5천세트의 주방용품을 주문했던 정부가 부도 소식을 접한 후 일부만 납품받겠다는 통보를 함에 따라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1백여 협력업체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피력,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고 있다. 네덜란드, 일본, 미국 등 주거래처도 동요없이 주문을 계속 내주고 있다. 최근 수원지법에 화의를 신청한 세프라인은 서울 서초동 본사와 용인물류센터, 인도네시아 공장부지를 매각키로 했으며, 산업재산권 일부를 처분하는 등 부도 탈출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77년 주방용품 수출업체로 창립된 셰프라인은 88년 1천만달러 수출탑, 94년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등 유명중소기업의 대명사로 통해 왔다. 셰프라인은 IMF 충격에 지울 수 없는 멍이 들었지만 회사를 정상화시킨다는 의욕에 가득 차있다. ◎희망전자/RSC기술 탁월 채권단 화의동의 희망전자개발(대표 김태영)은 79년 창업 이후 정부에 행정전산망 PC를 납품하고 컴퓨터 유통을 겸하다가 90년대들어 레이더영상변환장치(RSC)등 첨단 소프트웨어를 국산화한 유망기업이었다. 올해 RSC(레이더가 함정을 추적, 속도·방향·거리 측정)를 군에 60억원어치나 납품했고 수출도 추진하던중 지난 9월 컴퓨터주기판업체인 석정전자를 인수했다가 불황심화와 부실채권 발생으로 부도를 내고 말았다. 지난달 서울지법에 화의를 신청, 재기노력에 나선 희망전자개발은 싱가포르의 멀티그룹인 트라이텍 등 주요 채권자들로부터 화의에 동의한다는 협조의사를 끌어 냈다. 컴퓨터주기판쪽은 환율폭등으로 대만 등에서 일부 부품조달이 안돼 생산을 중단했으나 군에 납품할 물량은 소량이지만 생산을 지속하고 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고객을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려움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회사정상화를 믿는 직원들의 협조때문이다. 과장급 이상은 임금을 보류하고 사원은 50%만 월급을 받고 있다. 자체적으로 경비절감 운동도 벌이고 있다. 희망전자개발의 한 관계자는『국방현대화를 위해 꼭 필요한 RSC 등 레이더장비를 비롯한 각종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화의가 이뤄지면 충분히 재도약할 수 있다』고 의욕을 보였다. ◎바로크가구/무보수 근무·휴일 반납 등 정상화 총력 가구명가 (주)바로크가구(대표 위상돈)의 재기는 노조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바로크가구 노조는 지난 10월 부도가 나자마자 시간지키기, 질서지키기, 무보수로 일하기, 공휴일 반납등을 통해 제품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했음을 물론, 회사정상화를 위한 여건조성에 적극 나섰다. 이같은 노조의 구사활동은 결국 인천지방법원으로 부터 바로크가구에 대한 재산보전처분은 물론, (주)루벤스, (주)아이시스, (주)동림, (주)정림 등 4개 관계사에 대한 재산보전처분도 이끌어 냈다. 바로크가구는 조만간 한국기업평가(주)의 실사를 받을 계획인데, 늦어도 내년 3월경이면 화의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바로크가구의 재기는 이같은 법률적 절차에 머물지 않고 판매활동 강화, 신제품 개발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관련, 바로크가구는 최근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전국 6개 직할영업소에서 담당하던 대리점 관리업무를 중앙에서 직접 관장하는 쪽으로 판매시스템을 전환했으며, 영업인력도 기존의 12명에서 18명으로 늘렸다. 또한 클래식한 분위기의 붙박이장인 베니스를 비롯, 블루베리, 엘리제 등 3종의 신모델을 새로 선보였다. 노조대표들과 위상돈사장은 지난주 계룡산에서 단합대회를 가졌다. 이자리에서 노조대표들은 부도 뒷처리로 지친 위사장을 위로했고, 위사장은 고통분담을 넘어 진정한 애사심을 보여준 노조원들에게 한동안 숙인 머리를 들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신풍제약/노조 회사살리기 비상대책위 결성 신풍제약(대표 장용탁)은 지난 16일 최종 부도처리된 이후 아직 부도를 실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오밀조밀 탄탄하게 운영돼 온 회사가 갑자기 이렇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부도 일주일이 지나고 있지만 그 흔한 결의대회 한번 열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이번 기회에 조직을 새롭게 하는 등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직원들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서로간의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직원들은 이의 일환으로 서로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커피도 서로 권하고 먼저 웃으며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부서별로 매일 격의없는 대화의 시간을 갖고 하루일과를 협의하는 등 조직의 단결을 꾀하고 있다. 그동안 등한시해 온 경비절감에도 새롭게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전기, 물, 복사지등을 아끼기 위해 지침도 새로 만들고 있다. 조만간 본사와 안산공장의 노조가 주축이 돼 일종의 비상대책위원회도 가동할 방침이다. 꼭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새롭게 다시 뛰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생각이다. 그동안 꾸준히 흑자경영을 해왔기 때문인지 채권자들도 호의적으로 나오고 있다. 직원들 동요도 없고 영업도 부도 전과 다를 바 없다. 방만한 부실경영으로 부도가 난 것이 아닌 만큼 재기를 자신하는 모습이다.<중소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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