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재정위기가 유럽 경기를 침체로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유로존에서 한 발 떨어진 영국 경제에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경기침체 가능성이 고조되자 시장에서는 영국이 연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 경우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해 온 채권시장과 파운드화가 흔들릴 수 있어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경기가 침체 양상을 보이는 와중에 파운드화가 달러 대비 약세로 돌아서면서 시장의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며,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이르면 내달부터 돈을 찍어내서 채권을 매입하는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할 수 있다고 17일 보도했다.
영국 경제의 현실은 우울한 지표에서 잘 드러난다. BOE는 16일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2.2%에서 0.9%로 절반 이상 끌어 내렸다. 벼랑 끝에 선 유로존 경제가 영국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 3ㆍ4분기 실업률은 전분기 대비 0.4%포인트 오른 8.3%를 기록해 1996년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으며, 16~24세 청년 실업인구는 100만명을 돌파했다. 머빈 킹 BOE 총재는 이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국내 산업 활동이 내년 중반까지 침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경기 침체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날리자 시장에서는 BOE가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해 경기 부양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날 BOE가 2013년 물가성장률 전망을 1.3%까지 낮춘 것도 양적완화 확대를 위한 몸 만들기 성격이 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몇 달째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인 0.5% 선에서 동결하고 있는 영국 정부 입장에서는 양적완화 외에 뾰족한 부양 카드를 내놓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장에 돈이 풀릴 경우 이미 약세로 돌아선 달러 대비 파운드화의 가치가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UBS는 현재 파운드당 1.57달러 선인 파운드화 가치가 석 달 내에 1.50달러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여 온 영국 채권시장도 덩달아 흔들릴 수 있다. 파운드화로 발행하는 채권에 대한 수요가 줄어 자금 조달 비용이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