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고삐 풀린 엔저] "엔화 바겐세일 시작"… 소로스도 와타나베 부인도 '엔저 베팅'

엔화 이틀새 5엔이나 싸져… 추가하락 전망 지배적<br>엔저에 꾸준히 베팅해온 소로스 수억달러 수익<br>"엔·달러환율 연내 120엔도 위협" 전망수정 잇따라


"일본은행이 공인하는 엔화 바겐세일이 시작됐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일본은행(BOJ)의 추가 양적완화 발표 이후 지속되는 엔저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넷판은 4일 이 같은 표현으로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중앙은행의 추가 돈 풀기 정책과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의 해외자산투자 확대로 엔화 약세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BOJ의 추가 양적완화 발표 후 엔화는 2거래일 동안 1달러당 5엔이나 싸졌다.

환율을 결정하는 모든 요인들이 엔저를 가리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한 직후 일본은행이 정반대의 통화완화정책을 '깜짝' 발표한 후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을 타개하고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작정하고 엔저를 유도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엔저 유도 목적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4일 아마리 아키라 경제재정재생상이 "미일 간 (금융정책) 방향이 정반대로 가면 당연히 엔저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듯이 가파른 엔저는 이미 당국의 계산에 들어 있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여기에 GPIF의 투자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130조엔(1,240조원)을 운영하는 GPIF 자산 가운데 해외주식과 채권투자 비중은 각각 종전의 12%, 11%에서 25%, 15%로 높아지게 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GPIF가 추가매입하게 될 주식 규모만 11조5,000억엔어치에 달한다. 그만큼 많은 엔화 매도수요가 시장에 쏟아져나오게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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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당국의 의도에 따라 외환시장의 주요 변수인 금리(미일 금리 격차)와 수급(GPIF의 해외자산운용 확대) 양면에서 엔화 매도 압력이 거세질 것이라는 방향성이 뚜렷해진 만큼 엔화를 팔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에서도 세계적인 '큰손' 투자자부터 개인 외환투자자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엔저에 베팅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헤지펀드의 귀재'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가 운용하는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가 꾸준히 엔저에 베팅을 해왔으며 지난달 31일 일본은행 발표 이후 수억달러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세계적인 채권펀드업체인 핌코 역시 엔화의 추가하락을 예상하고 있다. 스콧 매더 핌코 최고투자경영자(CIO)는 "BOJ가 예상보다 빨리 움직였다"면서 엔화 가치 하락속도가 완만해지겠지만 앞으로도 추가 엔저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명 '와타나베 부인'으로 불리는 일본의 개인 외환투자자들도 꾸준히 달러화를 사들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한 외환거래업체 자료를 분석한 결과 3일 뉴욕시장 마감 후 엔화 매도, 달러화 매입 비중이 전체 외환거래의 61%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14엔을 돌파할 정도로 가파른 엔저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추가 엔화 하락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는 얘기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114.21엔을 기록, 2007년 12월27일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정부와 통화당국, 투자자들까지 모두 엔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황급히 환율전망 조정에 나서고 있다. 최근 이틀간의 급락세로 엔화 가치는 일부 IB가 제시한 내년 1·4분기 전망치에서 이미 크게 벗어난 상황이다. 미 경제매체인 CNBC에 따르면 호주 ANZ은행은 당초 2016년까지 115엔 도달이 어려울 것이라던 종전의 전망을 올해 말 달러당 115엔, 내년 중에는 120엔에 도달할 것이라고 수정했다. 노무라증권도 올해 말 엔·달러 환율 타깃을 당초 112엔에서 115엔으로 조정했다. 데이비드 만 리서치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대표는 "올해 말까지 120엔선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다만 엔화의 추가 하락속도에 대해서는 신중한 의견도 제기된다. 맥쿼리은행의 니잠 이드리스 환율·채권 전략 대표는 "일본은 환율이 115엔, 120엔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완만한 하락세를 통해 수입업자들이 시장여건에 적응하고 헤징전략을 세울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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