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우리사회의 가족은 인생의 힘인가, 짐인가?'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 딸의 특채파문을 계기로 새삼 가족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내심 가족을 챙겨야 한다는 부정(父情))이 도사리고 있었겠지만'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한 처사로 부녀 모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앞으로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국립대학 등에서 '내 자식부터 챙기겠다'고 하는 면면이 속속 나타나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모 장관 후보자는 위장전입 사유로 "따돌리기에 시달리던 딸의 교육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후보자도 부인의 쪽방촌 투기의혹으로 분루를 삼켰다. 이승만,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식ㆍ형ㆍ동생 등 가족들의 크고 작은 권력남용 또는 비리사건으로 큰 곤경에 처한 바 있다.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이 있듯이 할머니ㆍ할아버지 세대는 보릿고개를 겪으면서도 자식 교육을 위해 피땀을 흘리며 허리가 휘는 것을 묵묵히 참아냈다. 요즘도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자녀교육에 목메는 엄마들이나 '기러기 아빠'가 적지 않다. 국내외에서 자식들의 골프백을 메는 아빠들이나 자신의 모든 인생을 포기하고 딸의 운동을 뒷바라지해 온 김연아의 엄마처럼 좀 더 극성스러운 경우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학교는 물론 취업, 직장생활까지 자녀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매니저맘'이나 성인이 된 자녀의 인생을 조종하려는 '헬리콥터 엄마'도 있다. 자식들을 캥거루처럼 챙기려는'슈퍼맘 컴플렉스'로 인한 스트레스도 크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처럼 자식 뒷바라지를 마친 부모들은 노년에 짐이 되기 싫다며 따로 사는게 오늘날의 슬픈 자화상이다. 가족은 교육, 사회화, 사회통합, 유대 등 여러 순기능을 갖고 있다. 각박한 사회에서 의지할 곳은 가족 밖에 없다. 있는 집에선 가족간 재산싸움을 벌이기도 하지만 가족은 기본적으로 이해관계로 뭉친 집단이 아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큰 미국에서조차'저녁에 회사 일이나 약속 보다 가족이 우선'일 정도다. 미국 가족이 수평적 유대관계라면 우리나라는 수직적 유대관계가 강하다. 부모가 자기욕구를 충족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자식에 대한 헌신이 일반적이고, 노부모를 생각하는 자식들의 마음도 크다. 이러다 보니 가족과 공공영역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 점이 있다.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덕적 의무) 의식도 흐릿하다. 기업 등 민간영역에선 말할 것도 없다. 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옛 성현들은 자식과 제자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고 올바른 길로 안내했다"며 "오늘날에는 너무 자기가족 위주로만 생각하거나 공적 영역에서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엘리트층이 많다"고 지적했다. 가족은 기쁨이고 생활의 활력소이지만 때로는 멍에가 될 수도 있다. 오죽했으면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이 나오고 '초식남''철벽녀' 등 독신주의자가 늘고 있을까. 경쟁이 심화하는 사회적 환경에 따른 스트레스 증가와 양극화 심화에 따른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이혼 등 가정해체도 증가하고 있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가 원만한 관계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성격차이, 가정폭력, 외도, 경제 문제, 상이한 성장환경, 이기주의, 무시ㆍ소외감, 배우자 가족과의 분쟁, 가부장적 문화 등으로 갈등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가족 내에서 자칫 상대방의 문제점만 보면서 비난하려는 욕구가 솟구칠 때 겉으로 나타난 행동 이면에 감춰진 관심사를 헤아려보라고 지적한다. 권정혜 고려대 부부상담센터장은 "가족간에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고,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은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때로는 타협하고 조정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