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전뉴스'라는 게 있었다. 신군부가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홉시 뉴스 시작종이 울리자마자 내보냈다는 대통령의 동향 뉴스는 훗날 이렇게 대중들의 놀림감이 됐다. 사실 이는 정권에 대한 조롱이기도 했지만 권력의 시녀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언론에 대한 놀림이기도 했다. 이렇게 언론의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요원하던 시절,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언론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의 이상향이었다. 엄청난 세금이 투입되면서도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말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너도 나도 BBC를 배우자고 외쳤다. BBC의 전 사장인 그렉 다이크의 자서전 'BBC 구하기'는 이렇게 제대로 된 공영방송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BBC 구성원들의 언론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절로 읽힌다. 저자인 그렉 다이크는 2003년 이라크전 당시 대량 살상무기의 존재여부를 놓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첨예하게 대립하다 사임하게 된 인물이다. 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보를 윤색해 명분으로 사용했다는 앤드루 길리건 기자의 보도를 옹호하다 사장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 그의 사임이 발표되자 수천명의 직원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해임반대 시위를 벌였다. 심지어 지역 방송국의 한 진행자는 방송 중 거리로 뛰쳐나가 시위에 동참하기도 했다. 이런 모든 일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옹호하기 위한 다이크의 노력에 직원들이 화답한 것이다. 책은 그가 BBC에서 사임하기 사흘전인 2004년 1월말부터 시작해서 이후의 상황과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낸다. 55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지만 인물 중심의 서술에 이라크전 등 우리에게 익숙한 현안들을 다루고 있어 부담스럽지 않다. 천천히 BBC 격동의 시기를 따라가면서 저자의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과 그가 느낀 직원들의 공정한 방송에 대한 열망과 동지 의식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