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문 시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한문 선생님은 노총각이었는데 우리들 사이에 ‘공포의 터미네이터’로 불렸다. 180㎝가 넘는 우람한 체구에 눈매가 매서웠으며 좀처럼 웃지 않았고 성격 또한 과격(?)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우리는 선생님의 그런 카리스마에 눌려 한문 시간만 되면 ‘고양이 앞의 쥐’처럼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좀 과장해서 수박만한 주먹이 머리통을 강타했고 소곤거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수업 중에는 선생님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또각또각 칠판 글씨 소리만 들렸다. 그날도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한데 수업이 중반쯤 다다랐을 무렵 선생님이 떨어진 분필을 줍기 위해 살짝 몸을 구부리셨을 때다. ‘찌지직’ 선생님의 엉덩이 부분 양복바지가 찢어졌고 순간 익숙한 만화 캐릭터가 그 찢어진 틈새로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미키마우스’였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우리는 선생님의 강력한 포스에 눌려 웃을 수가 없었다.
한 10여초 동안 정지 필름 같은 시간이 흘렀을까. 교실 한편에서 누군가 숨죽이며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일순 교실은 온통 웃음바다로 변했다. 선생님도 멋쩍으셨는지 “애인이….”라는 말씀과 함께 씨익 웃음을 지으시며 그날의 해프닝이 마무리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비슷하지만 약간은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가끔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타인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는 경우가 있다. 한 사람의 언행이 폭탄의 뇌관이나 바이러스처럼 집단행동으로 번지는 이런 현상을 ‘사회전염’이라 일컫는다.
이 사회전염은 실제 사소한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누군가 내 앞에서 하품을 하면 본인도 모르게 하품을 한다거나 음식점에서 뭘 먹을지 선택하기 어려울 때 누군가 한 사람이 먼저 고르면 줄줄이 따라 고르는 행동들도 일종의 사회 전염이다.
얼마 전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승객들이 힘을 모아 구해낸 사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아 모두가 발만 동동 굴렸으나 누군가가 용기 있게 외친 한 마디에 사람들은 지하철을 밀기 시작했고 생명을 구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운전자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사회전염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이른 새벽 한적한 도로에서 앞차나 옆차가 빨간불에 출발할 경우 ‘나도 위반하자’라는 강한 충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맨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운전자가 신호를 제대로 지킨다면 아무도 신호 위반에 ‘전염’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문화도 ‘사회 전염’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기적이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