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남대문·동대문/장터 새벽 1시 “삶의 열기 1,000℃”

전국 의류의 절반가까이를 공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멀리 러시아 등 동구권에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는 서울 남대문과 동대문시장. 이곳에는 밤과 낮이 뒤바뀌어 새벽이면 어김없이 국내외 상인들이 북적대며 흥정을 하는 생존의 장터이기도 하다. 국내 최대 재래시장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는 양대산맥인 이들 시장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최근 대기업들이 가세한 동대문시장의 신상권쪽으로 상인들이 대거 몰리기 시작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양상. 그러나 남대문시장측의 반격도 만만치않다. 남성복·숙녀복 등의 특정품목을 전략상품으로 해 지방상인과의 거래관계를 계속 유지해가는 한편 그동안 도외시해온 쇼핑객들을 다수 확보해나가는 등 과거의 영광을 찾기위한 수성에 나서고 있다. 판매경쟁의 성패는 국내 의류 유통의 지각변동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내 의류도 매유통의 주도권을 확보키위해 치열한 몸살을 앓고 있는 남대문·동대문 새벽시장을 본지 기자가 현지 취재해 실상과 앞으로의 전망을 점검해본다.<편집자주>◎문닫은 점포 드문드문 매기 한산 역력/“잇단 이탈·주차난 등 심각” 상인들 걱정/남성복 전략 상품화 등 대책 마련 부심 남대문시장이 가장 성시를 이룬다는 새벽 2시께. 퇴계로 방면 6차선 도로 양 가장자리 길가에는 지방상인들이 타고올라온 대형버스 10여대와 승합차, 소형트럭 등이 일렬로 늘어서 심한 교통체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많은 경찰이 달라붙어 교통정리에 나서고 있지만 불가항력. 한번 주차한 차량들이 떠날 생각을 안해 마치 대형 주차장과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다. 지방상인들이 몰리는 곳은 인근에 형성된 남성복 도매상가다. 매스컴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빅게이트」 「빅벨」 등 시장브랜드제품을 파는 도매상가들은 큰 가방을 들고 의류를 다량 구매해가는 지방상인들을 맞기에 여념이 없다. 예부터 이어져내려온 남대문시장의 위력을 보여주는듯 하다. 그러나 숙녀·아동복상가 등이 밀집된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과거 지방상인들이 몰려 걷기가 힘들 만큼 북새통을 이루던 것과는 달리 승용차가 길을 비집고 나가는등 한산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새로나백화점 뒷편 여성캐주얼 의류상가에는 띄엄띄엄 문을 열지않은 점포까지 눈에 띠고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가장 크다는 대도상가로 들어가면 문을 닫은 점포가 더욱 늘어난다. 군데군데 셔터를 내린 점포가 너무 많아 열심히 장사해보려는 개점상인들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옆에 있는 대형 상가 삼익패션타운도 양상은 마찬가지다. 지상 7·8층에 있는 유명메이커 의류상가는 고객이 없어 상인들마다 한숨을 쉬고 있다. 고객이 다소 붐비는 곳은 지상 1∼3층의 숙녀복상가. 그러나 이곳에서 5년 넘게 장사를 해왔다는 김모씨(여)는 『예전보다 손님이 워낙 줄어 걱정이 태산』이라며 갑자기 매기가 왜이렇게 가라앉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남대문시장에서 아직까지 상품력을 갖고 있는 남성복·중년 여성복을 빼고는 도무지 장사가 되지않는다』는 상인들의 설명이다. 『캐주얼·아동복·액세서리·수입의류 등 대부분의 상품들이 죽을 쑤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남대문시장 매기가 이처럼 가라앉은 것은 최근 불경기 탓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동대문시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재개발로 동대문지역에 초대형 의류도매상가가 형성되면서 불과 4∼5개월 전부터 남대문시장 매기를 마구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장사가 안된다는 대다수 품목들은 이미 판매 주도권을 동대문시장에 빼앗긴 상태. 남성복과 중년 여성복시장은 아직까지 남대문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어 이를 기반으로 동대문측과 필사적인 판매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같은 와중에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간에는 어느 정도 장사를 할줄 안다는 상인들을 확보하기 위한 물밑경쟁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올 초까지만해도 경쟁우위에 있던 남대문시장측은 상황이 심각해지자 상우회를 중심으로 (동대문시장으로 이전이 예상되는) 상인 이탈시 불이익을 가하겠다는 공고를 공개적으로 내붙이는 등 상인 이탈방지에 나서고 있다. 동대문시장에서는 남대문시장의 거물급상인들을 온갖 특혜를 부여하면서까지 데려오겠다는 입장. 하오 11시부터 개점하는 새벽시장 개장시각을 앞당기는 문제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동대문시장에서 개장시간을 하오 9시30분으로 정하고 지방 상인들을 앞선 시간대에 대량 유입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남대문시장이 안고 있는 암적인 핸디캡은 주차장 문제다. 동대문 시장측에서 넓은 주차장을 확보하고 지방고객을 포섭하고 있는데도 남대문시장측은 주차장시설이 전무하다시피해 속수무책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남대문·동대문 시장간의 판매경쟁은 계속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동대문지역에 초대형 상가가 잇따라 들어서며 남대문 고객포섭에 나서고 있어 남대문시장 상인들간의 단합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이강봉> ◎매머드상가 속속개점 지방차량 “빼곡”/5천여개 점포에 남대문 상인 대거 이동/“도매비해 소매위축 불균형 심화” 지적도 23일 새벽 1시 동대문 상권의 신상가들이 몰려있는 동대문 운동장 뒤편 「아트프라자」앞 도로. 2차선 폭밖에 안되는 도로에는 각 상가가 운영하는 셔틀버스, 지방에서 올라온 전세버스, 개별 상인들의 승용차나 미니버스, 물건을 가득 실은 택시등 각종 차량이 뒤엉켜 어지럽다. 뒤엉킨 차량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손마다 커다란 의류 가방을 들고 바쁜 발걸음을 움직인다. 뒤엉킨 차량과 바쁜 발걸음은 여느 도매시장에서나 볼수 있는 모습이지만 소매상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각 상가가 경쟁적으로 볼륨을 높인 요란한 음악소리, 뮤직비디오 영상 등은 시장 현대화를 시도하는 동대문시장만의 풍경이다. 이곳은 새벽 1시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청계천 고가도로 아래에는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만 주차가 허용되는 공간이 있는데 이곳은 거의 만차 상태였다. 서울 이외에 경기, 대전, 심지어 강원 등 지방 차량들도 상당수 끼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이 동대문시장의 쇼핑차량임을 짐작할수 있다. 청계천 동평화시장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교통경찰은 『매일 새벽 차들이 북새통을 이룬다』면서 특히 올들어서부터 새벽 시간대에 아트프라자 앞부터 동대문 주차장이 있는 곳까지는 만성 정체구역이 됐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동대문 도매상가에 고객들이 가장 북적이는 시간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 정도까지. 신상가들이 속속 개점하면서부터는 경쟁이 과열돼 상가 개장시간이 과거의 11∼12시에서 요즘은 9시30분∼10시까지 앞당겨졌다. 이 시간대에 지방에서 올라온 전세버스들은 동평화시장앞 청계천, 동대문운동장 뒤쪽의 디자이너클럽앞, 그리고 동대문운동장 건너편에 최근 새로 문을 연 거평프레야앞 등에 차례로 지방 소매상들을 내려준다. 『일주일에 두번정도 서울에 와서 물건을 떼간다. 전보다 의류상가들이 많이 생겨서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에 동대문시장을 애용한다.』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한 상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 지방상인의 말처럼 소매상인과 도매상인들은 지금 남대문에서 동대문으로 이동이 진행중이다. 동대문 상권은 과거에도 대형 의류도매상가들이 있긴 했지만 의류도매시장의 메카인 남대문시장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던 세월이 길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새 생긴 대형 현대식 신상가들은 사정을 바꿔놓았다. 올들어서만 우노꼬레, 디자이너클럽 신관, 팀204, 거평프레야 등 5천개 이상의 점포가 들어서면서 상가마다 상당수 상인이 남대문에서 옮겨왔다는 것이 동대문 상가들의 설명이다. 최근 전반적인 경기가 워낙 위축돼있어 의류 도매상가들도 불황의 영향을 받고 있긴 하지만 올들어 새로 생긴 동대문의 일부 신상가들 가운데서는 불황에도 불구, 개장 초기보다는 꾸준히 고객수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개장한 「팀204」가 개장후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은 대표적인 케이스. 이 상가 1층에서 캐주얼 여성복을 판매하는 박모씨는 『개장 초기에는 고전했지만 지금은 초기보다 매출이 50∼70% 늘어났다』면서 『도매전문 상가로서 자리를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동대문 신상가의 대표주자라 할수있는 디자이너클럽도 개장 2년이 지났지만 고객들의 드나듬이 꾸준하다. 이 상가의 한 주차요원은 『동대문 주차장 앞에 하루에 들어오는 지방전세버스가 평균 40대 정도는 된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우후죽순처럼 상가가 생겨나는 마당에 동대문에 있다고 다 장사가 잘될수는 없는 일이다. 지방 양품점 감소, 중저가 의류브랜드 증가등으로 소매상인의 수요는 턱없이 부족한데 비해 도매상가의 공급만 급증, 수급불균형이 심화되기 때문이다. 동대문 상가들 사이에서도 명암은 엇갈린다. 신상가들의 공세에 밀려 오래된 재래 상가들은 이제 아예 도매장사 자체를 포기한 곳이 많다. 동대문에서 도매전문상가로 자리잡은 상가들은 나름대로 비결이 있다. 대형 현대식 상가로 쾌적한 쇼핑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지만 핵심전략은 마구잡이식으로 분양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장사를 할 사람들한테만 분양, 상가를 제대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90년대 초반 개장, 오늘날 동대문 상권의 밑거름을 다진 아트프라자가 그랬고 디자이너클럽이 그랬다. 도매상권 이동의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지만 성공적으로 과녁을 맞추는 일은 전적으로 동대문상가들의 숙제로 남아있는 셈이다.<이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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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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