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화산과 지진이 지축을 흔들 때면 주술사들은 지하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던 호랑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최근 미국의 성장엔진이 마침내 고속 페달을 밝기 시작했다는 보고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실이기만 하다면야 미국은 물론 아시아와 유럽에게 모두 좋은 소식임에 틀림없다. 미국의 경제성장은 곧 이들의 대미 수출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많은 전문가들이 이에 동의할까? 답은 `아니오`다. 이들은 기업들의 대량 해고를 지적하면서 미국의 실업률이 현재의 6%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미국의 강력한 경기회복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실업률 개선에 대한 성급한 기대는 그러나 미국 기업 경영진의 냉혹함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일본이나 독일과는 달리 미국 기업들은 수익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해고를 주저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직장에 붙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더 많은 일을 감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게 바로 최근의 기이한 생산성 향상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다. 기이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과거 경기 활황기 때 기업들은 기술 혁신을 위해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를 했었지만 경기 침체가 시작되면서 제일 먼저 R&D 관련 투자부터 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생산성 향상은 과거처럼 연구개발(R&D) 투자 같은 것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나의 가설에 동의한다면 최근에 행해진 수많은 그의 연설은 보다 신중했었을 것이다.
경제사학자들이 미국의 경기 회복에 대한 보고를 내년 대선 시점에 접한다면 지금처럼 당황하지는 않을 것이다. 화산과 지진을 땅속 깊은 곳에 있는 호랑이가 잠에서 깬 것에 비유하는 주술적인 설명과는 달리 대선이 임박한 시점엔 정부가 돈을 풀어 경기를 회복시킨다는 케인즈 이론으로 미국의 경기 회복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케인지언들의 주장을 빌자면 우선 13차례에 걸친 이자율 인하조치로 주택 건설, 자동차 판매 등 소비가 촉진돼 왔다. 케인지언들의 두 번째 주장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적자 재정정책이 아직까지는 기업과 가계의 지출 감소를 상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2003~2004년 회계연도는 감세정책보다 국방비 증액으로 인한 정부 지출이 적자 재정의 중심을 이룰 것이다. 이는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대다수 유로권 국가들이 수혜자가 될 것이다. 중국의 성장도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있는 인도 경제도 이익을 얻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수지는 지금보다 악화될 것이다. 이럴 경우 달러 가치는 약해질 공산이 크지만 여유 달러 자금이 월가에 대한 투자에 몰린다면 반대로 달러가 강세를 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라크전과 대테러 정책의 실패로 최근 약해지고 있는 부시의 지지도도 경기회복으로 다소 만회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그려온 시나리오는 다소 낙관적이다. 경제학이라는 부정확한 학문하에서 이런 시나리오는 현재 탄력을 받고 있는 미국 경기회복 상황을 과소평가했을 수도 2004년 경기 전망에 대해서는 반대로 지나치게 과대평가 했을 수도 있다.
월가의 주식 중개자들은 그들의 고객들에게 나보다 더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할 수도 있다. 분명히 많은 미국인들은 매년 20~30%의 수익률을 보장했던 지난 95~99년 사이 기술주의 붐이 재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월가와 실물경제가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항상 같은 길을 가지는 않는다. 또 내 개인적인 생각은 월가보다는 실물경제의 움직임에 더 가깝다. 수많은 중산층들은 거품경제가 붕괴된 2000년 이후의 상황보다는 더 나아질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시적인 증시 거품에 따른 일자리와 소득의 증가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부시 행정부는 해외에서는 물론 국내에서까지 미국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이라크에서의 항구적인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것이 실패한다면 상황은 최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를 배제하고 생각한다면 현재의 미국은 향후 2005년까지는 다른 국가들에게 좋은 이웃이 될 것이다. 이는 100% 자본주의도 없고 100% 사회주의도 없는 현대 글로벌 혼합경제의 덕이다. 이는 분명 유럽연합(EU)의 문턱을 두드리고 있는 동구 유럽 국가들에겐 길조다.
2010년께면 이전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구 유럽 국가들이 과거 일본이나 한국이 이루었던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기를 바래보자. 그것은 진정 행운이다.
<폴 새뮤얼슨(노벨경제학상 수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