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물량경쟁보다 질적경쟁을

최근 개봉한 한 블록버스터 영화는 극장마다 서로 그 영화를 못 걸어서 안달이다. 극장 측에서야 당연히 많은 제작비에 톱스타가 출연하는 대작이 역시 많은 관객을 모을 거라는 기대를 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제작비를 쏟아부은 블록버스터는 그만큼 많은 극장에 걸리고 흥행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공연계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은 대부분 이미 정평이 난 걸작이나 대형 뮤지컬에 더 솔깃해 한다. 점점 더 큰 것이 많은 것을 낳고 대형화의 순환고리를 만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든 공연이든 적은 자본으로 뭔가 창작한다는 것은 쉽게 엄두를 내보기 힘든 모험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숫자 경쟁의 시대에 우리 마음속에는 언제부터인가 대형화의 바람이 일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웬만한 규모나 명성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기가 힘든 업종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미 대형 마트에 밀려난 동네 슈퍼마켓은 말할 것도 없고 약국이나 미용실 같은 곳까지 유명 체인형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있다. 기업이든 국가든 할 것 없이 물량 경쟁에 나서다 보니 이제는 ‘대한민국 최고’니 ‘아시아 최대’니 하는 광고 카피도 별로 새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웬만한 기록들은 자고 일어나면 갈아치워져 있다. 이러한 기록 경쟁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간에도 해당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겠다고 선언한 두바이에서는 빌딩을 짓고 있는 사이 다른 나라에서 더 높은 빌딩이 올라갈까 봐 빌딩의 층수를 미리 정해두지 않았다고 한다. 왜 세계 최고(最高) 건물을 지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두바이에 무언가 특별한 게 없으면 주목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바이 전체가 세계의 투자자들에게 하나의 매력 덩어리로 비쳐야 하고 두바이 전체를 팔기 위해 튀어야 한다고 한다. 세상에는 도저히 숫자로 상대가 안되는 게임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런 숫자는 놀라게 할지언정 감동시키기는 어렵다. 필자는 국가 이미지를 제대로 세계에 알리려는 해외위성방송을 하면서 세계의 200개국에서 보느니, 몇 천만가구가 보느니 하는 외형보다 해외 시청자가 보내온 한통의 격려 편지로 ‘우리가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 물량으로 상대가 안된다면 대작의 흉내내기보다는 오히려 ‘좁은 길’을 권하고 싶다. 씽씽 달리는 고속도로는 작은 오솔길이 주는 아늑함을 따라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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