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8월의 독립운동가’ 이중언 선생

국가보훈처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안동 예안에서 의병을 이끌었던 이중언(1850~1910)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안동 하계마을에서 퇴계 이황 12대손으로 태어난 선생은 1879년 5월 대과에 급제해 사헌부 지평(정5품)에 제수됐으나 일본을 비롯한 강대국의 이권 침탈을 목도하고 낙향했다. 은거 중이던 선생은 1895년 10월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단발령을 공포하자 이중린 대장 휘하 전방장으로 의병의 선봉에 섰다. 선생이 속한 의병부대는 상주 태봉의 일본군 병참부대를 공격했고 선생도 3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투에 나섰으나 일본군에게 밀려 끝내 해산됐다. 해산 후 신암폭포 아래 은거하던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 다섯 역적의 목을 베소서)라는 내용의 상소문을 올려 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처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1910년 만 60세를 맞은 선생은 “을사년 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이후 오로지 한 올의 명주실과 다를 바가 없이 목숨을 영위해 온 사람이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됐으니 내가 어찌 감히 살아 있는 인간으로 자처하겠는가”라고 선언하고 단식을 시작했다. 선생은 단식 27일 만에 순절했는데 숨을 거두기에 앞서 가족들에게 “규범이 무너진 세상이라면 삶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성현의 가르침”이라는 내용의 봉서를 남겼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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