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상해서 장사 해 먹기 힘드네요”
카본사를 이용한 면상발열체를 생산하는 모 중소기업 사장의 탄식이다. 이 회사는 얼마 전 일본의 미쯔이상사로부터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 받아 미쯔이상사가 참가하는 국제박람회에 제품을 출품했다. 이 회사 제품이 놓인 탁자 아래에는 미쯔이상사와 협력 업체들의 이름이 나란히 표기돼 있었고 이 회사 이름을 써 넣은 명패도 함께 달려 있었다. 그러나 한국 업체를 나타내는 표시가 전혀 없어 미쯔이상사 측에 항의 했던 이 회사 사장은 자존심이 구겨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일본 업체들에 비해 당신네 제품이 우수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굳이 한국 업체라는 것을 나타내 봤자 일본에서 영업을 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 때문이었다.
무동력 레포츠용품을 최초로 개발, 세계 114개국에 특허 출원 한 또 다른 회사의 사장도 `국적(國籍)의 벽`에 부닥쳤다. 이 회사는 얼마 전 미국의 스포츠용품 마케팅회사와 미국내 판권에 대해 700만 달러의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고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판권을 넘기면 더 높은 금액을 쳐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당초 이 회사는 북미 지역에는 기술 이전료를 받는 방식으로 진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품 인지도가 높아지면 다른 지역에 진출하려 했다. 그런데 미국측으로부터 “레포츠 업계에서 `한국산(産)`은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져 판매가 쉽지 않은 만큼 실리를 택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뼈 아픈 충고(?)`를 들어야만 했다.
수출 전선에서 `한국산(産)`이라는 표시가 도움이 안 돼 할 수 없이 `노 내셔날리티(No Nationalityㆍ국적이 없는)`전략을 취해야 하는 게 우리 중소 기업들의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스포츠 모자의 경우 전 세계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우리 업체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산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실정이다. 나이키나 리복 등 유명 스포츠 업체에 납품되고 있지만 제품에 우리의 국적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데이콤, 정관장, 르까프 등 우리나라 유명 상표가 도용되는 사태가 발생해 업체들의 주의가 요구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한국의 대표 브랜드들이 잘 팔린다는 `방증(傍證)`이니 한국산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수출해 온 마당에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키워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로고를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미래다.
<정민정기자(성장기업부) jminj@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