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쇠귀에 경읽기' 규제완화

옛말에 그른 것 없다고 했으나 거기에도 예외는 있는 듯싶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거늘 이게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기업들의 규제완화 촉구 노력이 그런 사례다. 재계는 입이 아플 정도로 개선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만하면 정부가 귀를 기울일 만도 하건만 도대체 들어주지를 않는다. 어쩌다 반응이 있어도 곁가지만 건드릴 뿐이어서 속이 시원하기는커녕 갈증만 더하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건의 재계의 우는 소리가 다시 이어지고 있다. 대한상의ㆍ전경련 등 경제단체가 이미 정부에 규제완화를 건의했거나 할 예정이다. 전경련은 일주일 전 규제개혁 종합연구보고서를 제출했다. 5,025건에 달하는 규제 가운데 516건 폐지, 1,148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내용도 그렇지만 보고서가 나온 배경이 흥미롭다. 보고서는 지난 5월 한덕수 국무총리가 재계에 요청해 마련된 것이다. 그동안 규제를 많이 풀었는데도 재계가 계속 채근하니 그럼 기업입장에서 연구 검토해 제출해보라는 것으로 정부의 개선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뜻이었다. 이에 부응해 재계는 전경련과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동원해 오랜 작업 끝에 규제백서를 내놓은 것이다. 기대도 컸다. 정부가 먼저 제의했으니 이번에는 건의가 많이 반영돼 명실상부한 조치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을 것 같다. 개선과제의 대부분은 이번에 새로 나온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제기된 것이다. 정부가 몰라서 못한 게 아니라 알면서도 안한 것들이다. 문제는 규제에 대한 정부의 자세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청와대가 더 그렇다. 대한상의의 건의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앞으로의 조치가 어떨지를 짐작하게 한다. 청와대 대변인은 “규제의 숫자를 무조건 줄이라는 주장은 저급하고 잘못된 시장주의”라고 공박했다. 그러면서 규제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실질적 수준이며 앞으로는 과학적ㆍ합리적 분석을 내놓으라는 충고까지 덧붙였다. 규제에 대한 유연성 보다는 완고함, 심지어 적대감까지 느껴진다. 상황이 이런데 총리실이나 관련부처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설 턱이 없다. 게다가 각료들 중 ‘아니 되옵니다’를 외칠 소신파도 없다. 결국 출발은 거창했지만 이번에도 맹탕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반응보면 이번에도 기대難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라는 것은 옳은 말이다. 기업이 목말라 하는 것도 이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정부조치는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작 풀려야 할 핵심규제는 손대지 않았다. 수도권집중억제, 출자총액제한, 금산분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청와대 말대로 합리적 분석을 해보면 이들 규제의 모순이 금방 드러난다. 수도권공장총량제는 수도권집중 억제가 목적이다. 그런데 외국기업에는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교통량과 인구집중을 유발하는 것은 국내기업이든 외국기업이든 마찬가지다. 외국기업이 지은 공장이라고 종업원들이 외국에서 비행기로 출퇴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순환출자에 따른 왜곡된 지배구조를 막기 위해 도입된 출총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이전 계열사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출자관계에 있는 회사라면 소재지가 어디든 지배구조가 달라지지 않는다. 지방이전 기업에의 예외적용은 그게 지배구조 개선과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셈 아닌가. 한마디로 불합리한 규제들이다. 그런데도 합리적 분석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니 답답할 따름이다. 쇠귀에 경읽기가 따로 없다. 규제개혁은 경제활력,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 수도권규제 폐지 등으로 기업투자의 자국 U턴현상이 나타나고 일자리가 늘며 경제가 잘 돌아가는 일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 크다. 이런 것을 잘 듣고 볼 수 있도록 귀와 눈이 크게 열린 정부를 우리는 언제나 갖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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