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말레이시아 국가경쟁력에 대해서 컨설팅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가경쟁력연구기관인 IMD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말레이시아의 경쟁력 순위는 16위를 차지해 아시아의 빅3인 일본ㆍ중국ㆍ한국은 물론, 유럽의 빅3인 독일ㆍ영국ㆍ프랑스보다도 높게 나왔다. 필자가 말레이시아 정부 관료들에게 이렇게 순위가 높게 나왔는데 왜 컨설팅이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필자보고 IMD의 보고서 내용을 믿느냐고 물었다.
말레이시아는 물론이고 한국에 대한 IMD의 평가는 정말로 신뢰성이 가지 않는다. IM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쟁력 순위가 지난 2004년의 35위에서 2005년에는 29위로 6단계가 올라가더니 올해는 38위로 9단계나 떨어졌다. 국가경쟁력이라는 것이 이렇게 1년 만에 큰 폭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IMD 보고서를 자세히 보면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국가경쟁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좋은 분석 모델이 필요한데 IMD의 분석 모델은 이론적인 근거가 취약하다. 현재 IMD는 경제 성과, 발전 인프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의 4개 분류 항목으로 국가경쟁력을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 4개 항목이 상호 독립적이라기보다는 경제 성과라는 첫번째 항목은 종속 변수이고 나머지 3개 항목은 설명 변수인 성격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IMD는 이러한 구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서 발전 인프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이 높을수록 경제 성과가 높게 나와야 한다. 그런데 IMD 보고서에 따르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 발전 인프라(23위에서 24위), 정부 효율성(31위에서 47위), 기업 효율성(30위에서 45위)은 모두 순위가 떨어졌는데 이들의 종속변수로 볼 수 있는 경제 성과(43위에서 41위)의 순위는 오히려 올라가는 기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IMD의 분석 모델뿐 아니라 분석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다.
IMD 보고서에 대해서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차분한데 우리나라는 유난히 호들갑을 떤다. 특히 언론은 정부 때리기를 즐기고 있다. 이번 IMD 보고서에도 정부 효율성과 기업 효율성이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언론은 정부 효율성 하락만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정부에서는 대책회의를 하고 특별분석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변명을 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경쟁력 순위가 떨어진 원인을 두고 “정부 업적에 관한 객관적 수치는 괜찮은데 기업인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빴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또한 “설문조사 시점이 좋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 정도 설명으로 되겠는가. IMD 보고서의 문제점을 설문조사가 아닌 더욱 근본적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국가경쟁력에 관해 더욱 깊이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새로운 분석의 틀을 마련해 IMD 보고서를 역으로 평가할 정도가 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부는 IMD의 신뢰성 없는 보고서에 너무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 관련 정부 부처에서는 “IMD 국가경쟁력 지수 관리”를 하고 있을 정도이다. 비교적 손쉽게 높일 수 있는 항목을 집중 관리해서 IMD 경쟁력 순위를 높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이렇게 해서 몇 개 지수의 순위는 높일 수 있을지 모르나 더욱 중요한 경쟁력 원천을 등한시 하고 단기적 정책으로 인한 국가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국가경쟁력은 잘 짜여진 발전계획에 따라 장기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정책 결정자는 국가경쟁력을 1년 만에 높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더욱이 이러한 정책결정이 IMD 보고서와 같은 무책임한 내용에 의해서 좌지우지돼서는 안된다. 국가 자원과 정책 담당자의 귀중한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