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시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 단 두줄로 이뤄진 수수께끼 같은 시이다. 사람들 틈에 섞이고 싶다는 것인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시인 자신도 이런 애매성을 의도하고 썼을지 모른다. 이런 시에는 정답은 없지만 해석하는 자의 심리가 그대로 투영된다. 마치 심리 분석에 사용되는 로르샤흐검사처럼 똑같은 얼룩 무늬를 보면서도 각자의 해석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올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 열기를 보면서 우리 국민 모두가 도달하고 싶어하는 커다란 섬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월드컵이라는 세계적 축제를 계기로 한마음 한뜻을 이루고자 하는 집단적 열망이다. 월드컵이 만든 '열정의 섬' 4년 전에 이미 우리는 거대한 인파로 이뤄진 붉은 섬의 기적을 봤다. 한국 축구를 응원하는 순수한 열망에서 시작된 붉은 물결은 온 국민을 하나의 거대한 섬으로 연결시켰다. 돌이켜보면 질곡 많은 현대사에서 국민 모두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거국적 축제를 벌인 일이 있는가 싶다. 일제 암흑기나 해방 후 혼란기, 군사 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 국민에게 집단적 행동의 동기가 됐던 것은 늘 거부와 저항의 처절한 투쟁을 위한 것이었다. 때로는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유와 독립을 위한 항쟁은 그칠 줄 몰랐다. 비록 미완의 혁명으로 그쳤을 지라도 기미독립선언이나 4ㆍ19의거, 광주민주화운동 등에서 보여준 집단적 항거는 부당한 권력을 심판하고 단죄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이뤘다. 미약한 개개인의 꿈이 모여 이루는 희망의 섬이 현실의 지도를 변화시켜온 것이다. 4년 전 월드컵은 우리에게 환희와 열정의 섬이 실재함을 확인시켜줬다. 비장하고 절박한 구국의 결의가 아니라 유쾌하고 흥미로운 축제를 위해 운집하는 새로운 집회의 역사가 열렸다. 여기에서 지나친 낭비거나 집단적 광기라고 치부하기에 어려운 신선한 열정과 공동체 의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다이내믹 코리아’의 실체를 접할 수 있었다. 선진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교포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이곳은 심심한 천국이고 한국은 즐거운 지옥이야.” 쾌적하고 안정돼 있지만 지나치게 정태적인 서구 선진국에 비해 한국은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며 들끓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이 역동하는 에너지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민주화의 길을 닦았다. 급속한 근대화와 서구화로 각종 폐해와 소외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는 공동체 의식과 집단적 열망이 식지 않고 살아 있다. 월드컵이라는 세계적 축제를 통해 우리 국민의 열정적 기질과 놀라운 응집력은 들불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위기에 처했을 때는 구국의 혼이 되고 축제를 맞을 때는 화끈한 신명이 되는 생동하는 기운이 여기에 있다. 힘차게 재도약할 원동력 돼야 월드컵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8강이니 4강이니 하는 화려한 성적표가 아니라 하나가 될 때의 환희와 감격이다. 밤잠을 설치며 응원할 때의 흥분과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과 함께하는 일치감이다. 월드컵 후의 손익 계산을 따지는 뒷말들이 무성하다. 16강에도 못 들었고 경제적으로도 적자가 막심하다고 한다. 그러나 뜨거웠던 올 6월의 함성은 다함께 또 한번 힘차게 도약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줄 것이다. 한국 축구는 세계를 무대로 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으며, 우리 국민들은 열정적 기질과 화합의 능력을 펼쳐보였다. 이는 숱한 환란과 위기에 처할 때마다 슬기롭게 한뜻을 이뤘던 한국인의 저력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올여름 검은 밤을 밝혀준 붉은 섬의 기적은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그곳, 함께 얼싸안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섬이 우리에게 아직 살아 있음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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