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심층진단] 일본 CEO 늙어가는데 후계 없어 폐업 속출… 한국기업에 경종

■ 기업 고령화의 덫<br>중소기업 사장 절반 이상이 65세 넘겨야 은퇴<br>연 7만곳 폐업에 최고 35만개 일자리 사라져<br>대기업은 은퇴 번복… 세대교체보다 '구관' 의존



고령사회 일본의 '늙어가는' 기업인들이 주식회사 일본의 발목을 잡는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나이 든 사장의 후계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는 기업 수가 연간 1만개, 그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가 많게는 35만개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령경영자라는 새로운 리스크에 직면한 일본 기업들의 현실은 빠르게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일본의 경제 주간 다이아몬드지는 최신호(9일자)에서 1970년대 고도 성장기에 대거 창업으로 뛰어든 일본판 베이비부머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은퇴 연령에 도달했는데도 회사를 물려줄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경영자 고령화가 일본 기업들의 최대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업체인 데이코쿠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경영자가 바뀐 중소기업 가운데 23.8%는 사장 연령이 65~70세로 단카이 세대 경영자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된 것으로 풀이된다. 70세 이상은 30%가량에 달해 중소기업 사장의 절반 이상이 65세를 넘기고서야 은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규모가 작은 영세기업의 경우 경영자의 고령화 문제는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라종합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사업승계가 된 영세기업의 경영자 평균 은퇴 연령은 70.5세에 달했다. 노무라에 따르면 영세기업의 경우 경영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기업 경상이익이 악화돼 70세 이상 사장을 둔 기업의 경우 전체의 70%가 수익악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고령화에 따른 경영 리스크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그나마 늦게라도 회사 경영을 넘길 수 있으면 다행이다. 상당수 기업들은 후계자를 찾지 못해 아예 폐업 절차를 밟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정부 산하 중소기업기반정비기구 관계자에 따르면 후계자 부재를 이유로 폐업하는 기업은 연간 7만개 선으로 그로 인해 없어지는 일자리가 해마다 적게는 20만개에서 많게는 35만개에 달한다. 데이코쿠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연간매출 100억엔 미만 기업 39만7,000개 가운데 경영 승계할 후계자가 없는 기업은 전체의 67%인 26만5,000개다. 앞으로 단카이 세대 창업자의 은퇴가 급증할 경우 이 가운데 상당수는 폐업과 자산처분, 종업원 해고 수순으로 내몰려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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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를 찾지 못해 고령자 최고경영자(CEO)에 매달리는 현상은 대기업들에서도 나타나고있다. 일본 최대 의류기업인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64) 사장은 지난 10월10일 실적결산 기자회견에서 수년 전 공약했던 은퇴 방침을 번복했다. 야나이 사장은 앞서 "65세가 경영자의 체력이나 기력의 한계"라며 2014년 2월 65세가 되면 회장직만 유지하고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으나 "글로벌 경영을 가속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야나이 사장은 2002년에도 한 차례 외부 경영인에게 사장직을 물려줬다가 실적악화를 이유로 2005년에 복귀, 이후 회사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일본 최대의 가전 양판점인 야마다전기도 회사 경영난을 이유로 고령의 창업자가 다시 사장으로 복귀했다. 올해 70세인 야마다 노보루 사장은 5년 전 일선을 떠나 회장을 지내다가 지난 6월 다시 사장으로 돌아왔다. 지난해에는 캐논의 미타라이 후지오(78) 회장 겸 CEO가 경영위기 타개를 위해 약 6년 만에 사장으로 복귀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후계자 없이 70세가 넘는 고령의 CEO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은 경영상으로 적잖은 리스크임이 틀림 없다. 이 밖에 35년째 스즈키 오사무(83) 사장의 경영력에 의존해온 스즈키 역시 고령 CEO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선정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처럼 세대교체를 통해 차세대 경영자를 키우기보다는 당장 위기 타개를 위해 능력이 검증된 '구관'들에 의존하는 대기업들과 적극적으로 후계자를 찾기보다는 1970~1980대의 고령 창업주가 폐업 시기만 미루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관행으로 일본 기업들의 경영자 고령화는 눈에 띄게 심화하고 있다. 데이코쿠 데이터뱅크가 1978년부터 실행해온 전국규모 조사에 따르면 1980년 당시 52세가량이던 전국 기업체 사장의 평균 연령은 현재 59세 안팎으로 높아진 상태다. 고령화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일부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가족에 대물림을 고집하기보다 인수합병(M&A)이나 외부인재 영입 등 다양한 경영승계 채널을 찾기 시작했지만 일찌감치 안정적인 경영승계를 준비하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다. 대기업들 역시 경영자의 리더십이 강할수록 후계자를 찾는 데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시간을 들여 체계적인 경영승계 작업을 벌이는 기업은 보기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눈에 띄는 것은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손 마사요시ㆍ56) 사장이다. 아직 50대의 나이로 "앞으로 10년 이상은 열심히 하겠다"는 손 사장은 이미 3년 전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를 설립, 사내에서 미래의 후계자와 경영진 후보로 키울 인재들을 모아 직접 지도하고 있다.

또 기업인들의 은퇴 시점이 맞물리면서 경영자 고령화는 일본 산업계의 새로운 뇌관이 되고 있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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