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국가경영의 성공조건

국정을 경영에 비유하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손한 일에 속했다. 신성한 통치권의 행사를 돈 버는 행위인 경영과 동일시 하거나, 천신 만고 끝에 잡은 권력을 행사하는데 무슨 경영 같은 소리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야 말로 숨막히는 경쟁 환경 속에서 생존과 소멸을 반복해 왔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강력한 국가비전, 시간과 공간상의 변화를 관통하는 선견지명의 국가 장기전략과 경쟁전략, 효율적인 통치시스템,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건전한 가치관∙도덕심과 강력한 사회기강, 국력을 뒷받침하는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 능력 있고 사명감 있는 인재 등용 그리고 이들 요소를 어우르는 통찰력 있는 리더` 없이 번영하고 존속한 국가는 없었다. 이러한 국가 통치의 성공요소는 기업 경영의 성공요소와 정확히 일치한다. 기업은 시장에서 소비자와 경쟁자들의 평가를 실시간으로 받아 번영과 소멸이 즉각 이루어 지는 반면, 국가의 성과 평가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출범 100여 일에 불과한데도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큰 것 같다. 국민의 정부 시절 소비자 신용과 부동산 경기를 부추겨 무리한 내수진작을 한 결과 그 부작용이 예정되어 있었고, 선거 전략이 빚어낸 반미풍조와 돈으로 산 대북관계로 인하여 대미관계에 어려움이 다가올 것이 분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출범 초기의 정부 정책이 너무 헷갈린 것이다. 게다가 세대간의 갈등과 이념의 대결이 지나치게 첨예하게 드러나 돈 가진 사람과 기업하는 사람들의 불안감이 전에 없이 높아 졌다. 국민 다수가 준비된 정부일 것을 기대했고 국민 전체를 어우르는 통합의 정치를 바랬는데 내 편이 아니라고 여기는 계층의 소외감과 박탈감을 지나치게 증폭시켜 버린 결과다. 대통령이 빠른 학습 속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그나마 위안일 따름이다. 지난 대선의 결과는 변화에 대한 국민들의 갈망이 어울려 빚어낸 것이다. 국민들이 원했던 변화란 아마 국가 비전 자체의 변화나 인위적인 세력 균형의 변화라기 보다는 세계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정치∙행정∙경제운용시스템의 개혁과 변화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 동안 많은 국민들이 목도한 것은 흡사 사회개혁이 일어난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노사분쟁의 해결방식과 노동부장관의 노조관, 일부 언론과의 갈등, NEIS를 둘러싼 의사결정의 난맥상 그리고 빈발하는 언어 폭력 등이 많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 것이다. 위에서는 맹수가 으르렁거리고 밑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절벽에 매달려 전심전력을 다하여 싸우는 격이다. 지금은 어차피 변화와 갈등을 피할 수 없는 시대다. 박정희 패러다임이 폐기 된 뒤의 공백이 크고 농경사회∙산업사회∙정보사회의 3세대가 한 지붕 밑에서 동거하는 상황에서 공감대가 쉽게 형성될 수 없다. 갈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힘들어 보이기 때문에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갈등의 해결 보다는 국민 다수가 공감할 수 있고 갈등을 덮을 수 있는 이념 중립적인 국가 비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자리 창출과 기업 강국`이라는 중기 국가 비전을 제안한다. 국민 모두가 일할 기회를 갖지 않고는, 소득 2만 불을 10년 내에 달성하지 않고는(이미 많이 늦었다), 세계 500대 기업에 드는 기업이 적어도 10개 정도가 나오지 않고는, 제대로 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 들이 꽃 필 수 있는 공정한 경영환경이 되지 않고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 설 수 없다. 이제 우리사회는 경제적 기반만 확고하면 이념이나 세대 간의 갈등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였다고 믿는다. 이러한 국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능력 있고 기개 있는 진정한 프로들을 널리 구하여 적소에 투입하고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며 이들을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본래 정책목표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충되는 정책을 포기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2대 국정현안인 지방균형발전과 동북아 경제중심국가의 구축은 앞에서 제안한 `일자리 창출과 기업강국`의 비전과 상충되지 않는다. 협력적 노사관계의 확립을 위한 법과 원칙의 중립적인 집행, 그리고 규제개혁(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자치단체에게 규제개혁의 선택권과 주도권을 주면 지방균형발전은 저절로 진행된다. 전국을 경제특구화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만 제대로 되면 나머지는 민간부분이 해결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단히 매력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시장경제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정책방향만 확고하다면 외국인투자는 몰려든다. 예산도 거의 들지 않는 경제 회생의 묘책을 왜 외면 하는지…. <김일섭(이화여대 경영부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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