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대통령의 약속

심재엽(국회의원 한나라당)

법은 상식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일상사를 지배하는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가치인 상식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이를 지킬 것을 약속한 것이 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약속은 그것이 상식의 범주 안에 있다면 법과 다를 바가 없다 하겠다. 법과 약속에 차이가 있다면 법은 지키지 않을 때 처벌을 받고 약속은 지키지 않을 때 지탄을 받는 점일 것이다. 이렇듯 약속은 법과 동일한 가치로 존중돼야 하며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무법천지와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의 약속. 국가 최고통치자로서의 약속은 어떤 종류의 약속이라도 종국에는 국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만큼 반드시 지켜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그 약속의 크기만큼 국민은 박탈감을 느낄 것이며 더 나아가 국민들에게 약속을 경시하는 도덕적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국민의 준법정신이 해이해지는 것과 같은 논리다. 따라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대통령의 약속이 실천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월18일 이례적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보고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경제부처 장관과 국회의원 및 전경련회장단을 비롯한 중소기업 대표들과 학계ㆍ노동계ㆍ시민단체 대표들 앞에서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기업들이 적극 투자에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또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 완화와 관련해 환경과 노동인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규제는 지켜나가되 풀 것은 확실히 풀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껏 규제가 속 시원하게 풀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재정경제부나 공정거래위원회ㆍ국무조정실을 비롯한 어느 부서도 대통령의 약속을 뒷받침하는 시원한 후속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여당이나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ㆍ15 광복절 기념사에서 노 대통령이 과거사 진상특위 구성과 국가기관의 과거사 정리를 언급하자 국가정보원과 국방부에서 즉각적이고 경쟁적으로 이에 호응하고 나왔다. 가뜩이나 행정수도 이전 등의 각종 국정 현안들로 국론이 분열돼 있는 마당에 또 다른 국론 분열이 예상되는 과거사 진상조사 특위 구성에 다투어 앞장서는 것을 보면서 대통령의 약속이 지니고 있는 무게가 얼마나 가벼운지 그저 놀랄 뿐이다. 민생경제를 살려보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으면서 한가하게 과거사 들추는 일에 신명을 내는 것을 보며 약속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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