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대주주들이 경영권 유지 및 승계를 목적으로 발행했다는 시비가 일던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무상 소각하거나 소각하겠다는 결의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소액주주의 권익을 침해한다는 사회적인 논란을 해소하는 동시에 기업 투명성을 높여 주가 할인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17일 금융감독원 및 업계에 따르면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은 지난 8일 470만주 규모의 동양메이저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전량 무상 소각했다. 또 효성그룹 조석래회장의 세 아들이자 대주주인 조현준 부사장, 조현문전무, 조현상 상무도 547만주 규모의 해외 BW를 전량 무상 소각하겠다고 이날 발표했다.
현대산업개발의 대주주인 정몽규회장도 보유중인 해외 BW 983만주에 대해 무상 소각키로 한 지난 7월 이사회 결의를 이날 공시를 통해 재확인했다.
이들 대주주가 포기한 BW는 모두 해외에서 발행된 것으로 주가가 떨어질 경우 행사가격이나 전환가격이 자동으로 조정되는 리픽싱(Re-fixing) 조항이 옵션으로 붙은 것들이다. 리픽싱 옵션이 붙은 BW를 보유한 대주주는 주가 변동에 따른 위험이 전혀 없지만, 기존 주주는 주식 수 증가에 따른 주가하락 위험을 그대로 떠안는다는 점에서 특혜 논란이 제기됐었다. 또 이는 잠재적인 물량 부담 요인으로 작용, 이들 기업의 주가 할인의 요소로 작용해왔다.
그 동안 참여연대는 “두산ㆍ현대산업개발ㆍ효성ㆍ동양메이저 등이 발행한 리픽싱 옵션BW의 경우 해외에서 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있는 오너일가가 대량으로 보유하면서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이 같은 지적에 따라 두산은 지난 2월 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던 BW를 전량 무상 소각한바 있다.
또 동양의 BW 소각에 이어 효성도 같은 결정을 내림에 따라 그 동안 특혜 논란이 됐던 이들 기업 대주주의 해외BW 문제는 모두 해소되게 됐다. 다만 금융감독원이 현재 이들 기업에 대해 증권거래법 및 공시의무 위반 등을 조사 중이어서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주목된다.
그 동안 문제를 제기해온 참여연대는 일단 대주주들의 이번 결정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자발적으로 권리를 포기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지는 동시에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주식시장에서 이들 기업들의 주가는 엇갈렸다. 현대산업개발은 이날 지수 약세 속에서도 6.36%나 올랐다. 효성도 0.72% 오르며 선방했다.
그러나 최근 인수합병(M&A) 기대감에 연일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던 동양메이저는 장중 한때 가격제한 폭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차익 매물이 대거 쏟아지며 12.30%나 크게 떨어졌다.
<김정곤기자 mckid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