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체감경기를 반영하는 실질 국민총소득(GNI)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는 것은 가뜩이나 경제 전체의 외형(GDPㆍ경제성장률)이 쪼그라드는 판국에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졌다는 의미다. 국민들의 소득감소는 구매력 약화→소비부진→성장률 하락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여기에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예상보다 나빠져 경기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갑이 텅 비었다=3ㆍ4분기 국민들의 실질구매력을 의미하는 실질 GNI 지표는 성적표로 따져보면 낙제점 수준이다. 우선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3.5%를 기록했다. 1년 전에 비해 소득이 감소한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1998년 4ㆍ4분기(-4.8%) 이후 처음이다. 전기 대비 증가율도 -3.7%로 1998년 1ㆍ4분기(-9.6%) 이후 최저치다. 지난 1ㆍ4분기 -1.2%였던 실질 GNI가 2ㆍ4분기 1.2%로 회복됐다가 3개월 만에 최악의 상황으로 추락한 것이다. 또 국민총소득에 국외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경상이전(송금)을 더한 국민처분가능소득 역시 전기 대비 0.4% 감소했다. 이 역시 1998년 3ㆍ4분기(-1.0%) 이후 최악이다. 실질 GNI는 국민의 지갑 사정을 보여주는 지표로 이 수치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것은 경제가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실제 소득은 오히려 줄었다는 뜻이다. 실질 GNI 감소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교역조건이 악화된 데 따른 영향이 크다. 정영택 한국은행 국민소득팀장은 “원유가격이 8~9월부터 낮아졌지만 도입계약의 시차 때문에 10월부터 국내에 반영돼 GNI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빠른 경기하강=이날 발표한 3ㆍ4분기 성장률은 한은이 10월 발표한 속보치보다 악화됐다. 민간소비는 전기 대비 0.1% 늘어나는 데 머물러 사실상 ‘제로 성장’에 그쳤다. 교통(-2.5%), 통신(-1.2%) 등이 감소했으며 교육(0.4%), 임료ㆍ수도광열(0.1%) 등도 저조했다. 투자도 거의 동결됐다. 설비ㆍ건설ㆍ무형고정자산 투자로 구성된 총고정자본형성은 전 분기보다 0.7% 늘어났다. 설비투자는 속보치(2.3%)보다 0.2%포인트 하락한 2.1%에 그쳤고 건설투자는 0%로 속보치(0.3%)보다 뒷걸음질쳤다. 수출도 -1.8%를 기록, 속보치보다 0.1%포인트 나빠졌다. 제조업에서는 음식료ㆍ담배(-0.6%), 가구ㆍ기타(-1.7%), 전기전자(-1.0%) 등이 감소세를 나타냈다. 서비스업에서는 통신(-0.1%), 부동산(-0.8%), 오락.ㆍ문화서비스(-0.7%) 등이 줄었다. 정 팀장은 “속보치 발표 이후 산업생산지수와 금융기관의 분기결산 등이 추가 반영되면서 수치가 더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내수와 수출이 시간이 갈수록 나빠지는 등 경기하강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4ㆍ4분기 이후 더 나빠진다=문제는 4ㆍ4분기 이후가 더 우려된다는 점이다. 각종 지표상 내수와 수출이 동반해 내리막길을 질주하는 형국이어서 3% 성장은 물론 2% 성장도 위태로워 보인다. 수출은 지난달 전년 동기 대비 18.3% 감소했다. 2001년 12월 이후 7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조선을 제외한 컴퓨터ㆍ가전ㆍ반도체ㆍ석유화학ㆍ자동차부품 등 거의 모든 품목이 전멸했다. 추락하는 내수 역시 날개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현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10월 동행지수가 전달보다 0.8%포인트 떨어져 9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향후 경기국면을 예고하는 선행지수 역시 0.5%포인트 하락해 11개월째 하락세를 나타냈다. 동행지수와 선행지수가 9개월째 동반 하락한 것은 1981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정 팀장은 “금융위기 여파가 생각보다 빠르게 한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고용악화ㆍ가계부채ㆍ수출감소 등으로 경제상황은 당분간 회복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처럼 수출 감소폭이 크면 4ㆍ4분기에 3% 성장은 어려울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연간 전망치인 4.4%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