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의도 산책/11월 24일] 예산 심의에 충실하라

"시계에는 오직 '현재'라는 두 글자뿐이다. " 세계적인 작가 셰익스피어가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를 의식하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귀중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각자 역량에 달렸다. 선진국 국민은 자신과 상대방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간은 생명을 의미하며 돈의 성격이 강하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요즘 국회에서는 내년도 예산안 심의 및 처리 문제가 선결과제다. 특정사안 빌미로 늦춰선 안돼 나라 살림살이인 국가 예산안을 충분히 심의하고 처리한 뒤 예산을 적기에 집행할 때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아직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다. 경제회복을 위해 국가 재정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 17일 이례적으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 과천청사에서 오는 2010년도 예산안의 조속한 국회심의를 촉구하는 합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윤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전대미문의 경제위기에서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하는 상황인데 회복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살려나가야 할 것"이라며 "어느 해보다 (재정)조기집행이 필요해 직접 호소하는 자리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회의원들은 경제부처 수장으로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는 윤 장관의 충정을 헤아려줬으면 한다. 그는 정치색이 희박한 경제관료 출신이다. 시일에 쫓겨 졸속으로 예산을 심의하다 보면 사업내용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대충대충 넘어간다. 예산은 대다수의 국민이 꼬박꼬박 낸 세금으로 충당된다. 국회의원과 공직자는 국민의 피와 땀의 대가로 엄청난 세수가 마련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혈세가 절실하게 필요한 곳에 사용되도록 편성됐는지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입법활동과 더불어 예산심의는 국회의원의 고유권한이며 존재 이유다. 특정사업 예산을 빌미로 국가 전체 예산심의를 거부하거나 지연시킬 경우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시간은 자꾸 흘려가는데 예산심의 문제를 놓고 논란하는 모습을 보니 한심하다. 국회는 이미 상임위별 예산심의를 마치고 이번주에는 예결위를 본격적으로 가동해야 할 입장이다. 그런데도 여야는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4대강 관련 상세자료를 제출했는데도 민주당이 추가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국가 발전의 발목 잡기라고 비판한다. 반면 야권은 예산심의를 거치지 않은 4대강 공사의 착공식에 대한 법적 대응을 강조하는 한편 4대강사업의 구체적 내역을 제출하라며 공세를 가하고 있다. 국회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이시종 의원은 "4대강사업의 경우 공구별로 공사비 편차가 크게 나타났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긴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가 예산심의는 심의대로 하고 세종시 수정문제 같은 국가 현안은 현안대로 다뤄야 한다. 국가예산을 다른 현안과 맞물려 정쟁의 볼모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예산심의와 국가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국익 차원에서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 유사사업 줄여 예산낭비 막아야 논란이 되는 4대강사업 문제를 내년도 전체 예산심의에 연계시키면 곤란하다. 국회는 삭감조정이 불가피한 연례적 집행부진사업과 유사ㆍ중복 사업 예산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특히 국회 예산정책처가 신규사업의 경우 사업계획이 미비하거나 필요성이 낮은 35개 사업(5,883억원 규모)에 대해 삭감을 주문했다. 국회는 이런 점을 충실하게 반영했으면 한다. 졸속ㆍ부실 심의나 의원들의 의도적인 막판 끼워넣기에 따라 불요불급한 사업이 선정되면 막대한 예산을 낭비할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정부는 야당이 요구한 4대강사업 예산 관련자료를 충실하게 제출하고 야당 지도부는 국정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대승적 자세로 예산심의와 처리에 적극 참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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