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1월23일] 커티삭


영국인들의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다. 미국 선박과의 속도경쟁에서 늘 뒤졌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최고의 돈벌이였던 중국과 차(茶) 무역의 관건은 속도. 중국에서 나오는 차의 어린 잎을 얼마나 빨리 영국 시장에 가져오냐를 놓고 치열한 경쟁(Tea Race)이 벌어졌다. 승자는 주로 미국. 1850년 미국 배 오리엔트호가 홍콩~런던을 95일에 주파하는 기록도 세웠다. 영국은 절치부심하며 1869년 11월23일 새로운 배를 선보였다. 커티삭(Cutty Sack). ‘범선 조선술의 정점’으로 불리는 선박이다. 왜 범선이었을까. 증기선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증기선이 시속 8~10노트(knot)인 반면 고속 범선은 13노트 이상을 냈다. 증기선의 석탄 냄새가 차맛을 변질시킨다는 선입견도 범선을 고집한 이유였다. 건조비 1만6,150파운드, 다른 배보다 두 배가량 돈을 들여 만든 커티삭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중국~영국 티레이스에 8차례 투입됐지만 번번이 우승을 놓쳤다. 고비마다 돛대가 부러지는 불운을 겪은 탓이다. 진가를 발휘한 것은 1884년. 오스트레일리아~영국 양모운반 항로를 67일 만에 달렸다. 순항속도 17노트, 순풍을 맞을 때는 20노트를 낸 적도 있다. 범선 커티삭은 갑자기 잊혀졌다. 증기기관의 발달로 기선의 속도가 빨라진 가운데 1895년 외국에 팔린 후 종적을 감췄다. 커티삭이 부활한 것은 1922년. 반파 상태로 발견돼 관심사로 떠오른 직후에는 위스키 ‘커티삭’까지 나왔다. 그리니치 해양박물관에 실물 전시 중인 커티삭은 2005년 화재로 일부 손실됐지만 유료관람객 수천만명을 끌어당긴 외화벌이 수단이다. 범선시대의 전설적인 속도경쟁, 범선시대에 대한 동경, 문화재 보관 노력이 어우러져 무형의 상품을 낳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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