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당선후 만 한 달이 되던 지난 주말(18일) 선보인 정치행보는 노무현식 정치의 방향을 가늠케 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이날 63빌딩의 한 음식점에서 여야 총무와 3자회동을 갖고 국정현안을 논의했다. 이날 저녁 그는 KBS의 특별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민을 상대로 정책구상을 설명했다. 그는 야당인 한나라당의 서청원 대표와의 회동도 제안해 놓은 상태이고, 이번주중 회동이 성사될 전망이다.
노 당선자와 여야총무와의 회담은 모양부터가 파격적이다. 원내총무는 노 당선자가 약속한 원내중심의 정당개혁에서 핵심을 이루는 요소라는 데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제까지 대통령과 정당 인사들과의 만남은 총재하고 만나야 격에 맞는 것처럼 인식돼왔다. 그래서 명칭도 영수회담이라고 했고, 단독회담이냐 합동회담이냐 하며 형식을 따지는 데 치중했다. 장소도 정당대표를 청와대로 불러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런 권위와 형식 위주의 회담이었기에 돌아서면 합의 내용을 부인하고, 서로 배신했다고 삿대질하기에 바빴다. 청와대에 입주하지 않은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시내의 음식점을 회동장소로 정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찾아가서 하는 회담, 형식 보다는 실질을 중요시하는 회담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의 이 같은 대화자세는 대통령 취임이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노무현 정부는 여소야대 국회에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가 총무들과의 회동에서 강조했듯이 과거 대통령들은 정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려고 했으나 이젠 당정이 분리돼 있고 제왕적 대통령과, 의원 빼내오기 식의 인위적 정계개편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커 그런 시도는 통하기 어렵게 돼 있다. 이런 여건에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오직 대화밖에 없다.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할 경우 여론에 호소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여론 정치는 야당에 대한 설득노력을 제대로 했을 때에만 효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야당과의 대화를 소홀히 한 채 여론을 업으려고 하는 것이 포퓰리즘 정치다. 노 당선자는 방송매체를 이용한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국정능력을 과시하고,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한 대내외적인 불안감과 의구심을 해소하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나, 정치의 최선은 국회를 통한 여론수렴이다.
총무회동에서 노 당선자는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의혹사건에 대해 정치적인 고려없이 의혹을 해소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한나라당의 이규택 총무도 의혹사건을 인수위법 및 인사청문회법 처리와 연계하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야당도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따질 것은 따지는 실사구시의 자세로 정치발전에 임해주기를 바란다.
<이혜진기자 has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