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열린 의식/이근영 신용보증기금 이사장(로터리)

유럽여행에 나서면 관광코스마다 박물관이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흔히 박물관이라면 유물이나 예술품을 소장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유럽에는 자연사, 우주, 향토, 민속, 지역특산물이나 유명인사와 관련된 다양한 박물관이 많다.외국인 입장에서 한두시간내에 전시내용을 모두 이해하기는 애당초 무리다. 그러나 박물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분명한 사실 중의 하나는 유럽인들이 자기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이들의 의식 저변에는 짙은 자존의 「우리 의식」이 배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한민족의 「우리 의식」도 이에 못할리 없다. 반만년의 문화민족이며, 서구가 2백년이상 걸려 이룩한 경제성과를 불과 30년만에 따라잡은 저력의 우리가 아닌가. 그래서인지 한국인의 대화중에 유독 「우리」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직장, 학교, 고향, 종교, 취미등에 따라 우리의 모임도 많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농촌의 두레나 향약의 정신에서 보듯이 개인보다 소속된 집단과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상부상조의 미덕을 실천해 온 공동체적 삶의 뿌리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만사에 명암이 있듯이, 「우리 의식」이 던지는 어두운 그림자도 없지 않다. 이른바 모든 이에게 마음을 여는 「열린 우리」보다는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남들과 만리장성을 구축하는 「닫힌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솔직히 지금 우리 사회에는 남이야 어찌되든 나 또는 우리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집단이기주의가 지나치게 확산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 대학, 우리 지역, 우리 부서, 우리 교회만의 이익을 앞세우는 빗나간 「우리 의식」이 우리 사회 발전의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 세계가 민족국가로의 잔류를 거부하고 인접국과의 블록화를 통한 상호협력에 분주하고 세계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마당에 지역주의, 집단주의의 세포분열에 힘을 허비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특정지역이나 집단에 소속됨에 자족하는 이같은 자폐적 쇼비니슴으로는 자신을 미국인, 프랑스인, 독일인으로 밝히지 않고 세계인으로 내세우는 서구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도 없다. 새해 벽두부터 금융에 대한 발상자체를 전환시키는 금융개혁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그 첫 조치로, 얼마전 개혁의 밑그림을 그려나갈 금융개혁위원들이 선정되었다. 한국판 빅뱅으로 불리며 가히 문민개혁의 대미를 장식할 이번 금융개혁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매우 높다. 금융개혁이야말로 금융산업이 그간의 낙후와 부진을 딛고 차제에 경쟁력을 제고하여 국가경제의 혈맥 구실을 다하는 첨단분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의 반향일 것이다. 금융개혁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경쟁의 원리를 바탕으로 저축자로서 가계, 자금수요자로서 기업, 자금공급자로서 금융기관등 금융산업관련자 모든 이의 여망을 담은 열린 의식으로 세계를 향해 21세기 한국금융의 청사진을 개혁의 화폭에 그림으로써 우리의 토양에 뿌리내릴 금융개혁이 이루어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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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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