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히든챔피언 가로막는 상속세

박상근 세무회계연구소 대표


지난달 독일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경제를 이끄는 강소기업 '히든챔피언'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독일에는 대를 이어가며 가업을 승계한 히든챔피언이 많다. 13대를 이어온 제약·화학기업 머크가 대표적이다. 독일에 명문 장수기업이 많은 이유는 기술력·장인정신·고용안정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기업의 연속성을 보장한 독일 상속세제를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먼저 각국의 상속세율을 보자.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 여기에 최대주주에 대한 할증 세율은 무려 65%에 달한다. 반면 독일은 30%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한국의 절반 수준인 25.2%에 불과하다. 일본과 함께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중소기업이 강한 독일·일본과 우리나라의 상속세 부담을 비교분석한 자료는 왜 독일·일본 중소기업이 강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소기업인이 10년간 영위한 비상장 중소법인(주식가치 100억원)과 50억원짜리 개인기업, 그리고 현금성 자산 20억원 등 총 170억원어치를 배우자 및 2자녀에게 상속할 경우 상속세는 독일 5억5,000만원, 일본 12억7,000만원인데 한국은 무려 61억9,000만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상속세가 독일과 일본에 비해 4.9~11.3배나 높다. 이런 고율의 상속세를 물고 살아남을 기업이 과연 몇 개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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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가업상속에 대해 피상속인의 사업경영기간에 따라 최대 500억원을 한도로 가업상속 재산가액을 상속세 과세대상에서 빼주는 지원세제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있으나마나한 제도로 전락한 지 오래다. 가업상속 지원세제를 적용받은 기업은 지난 5년간 연평균 41개에 불과했다. 이유는 공제 요건이 터무니없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상속기업 대부분이 최고 50% 세율로 상속세를 내고 히든챔피언 대열에서 탈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업상속세제 지원을 받으려면 사전 요건 8가지, 사후 요건 3가지 총 11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반면 독일은 기업 규모나 가업승계 전 사업 영위기간 등 아무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고용유지조건만 지키면 과중한 상속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즉 상속 후 5년간 상속 당시 고용수준의 80%를 유지하면 상속세의 85%, 7년간 100%를 유지하면 상속세의 100%를 경감한다. 일본도 유사한 세제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방향으로 가업상속 지원세제를 단순화해야 한다. 현행 상속세제로 히든챔피언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에 비유)나 다름없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오는 7월까지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 정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다만 현행 상속세율을 국제수준 최고세율(25.2%)과 우리의 소득세 최고세율(38%)을 감안해 기업 경쟁력과 히든챔피언 출현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으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 또한 가업상속 지원세제를 그림의 떡으로 만들 정도로 까다로운 공제 요건과 공제 한도를 모두 없애고 일정 기간 고용유지조건 한 가지만 지키면 원활하게 가업을 승계받을 수 있는 세제를 마련하기 바란다. 이는 유망 중소기업이 히든챔피언으로 클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을 터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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